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의 핵심은 2040년까지 현재 900대 수준인 국내 수소차 보급을 290만대로 늘리고 14개에 불과한 수소충전소를 1,200개소 확충하는 것입니다. 수소를 활용한 발전용 연료전지 생산도 2040년까지 국내에만 7기가와트(GW) 수준으로 키울 계획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수소 공급이 필수적입니다. 공급이 원활하려면 생산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져야 하고, 대량 공급이 가능해야 합니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환경 오염 문제도 없어야겠죠.
◇2040년까지 연간 526만톤 수소 공급한다지만...“정부 해법은 한계”=산업통상자원부가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통해 오는 2040년까지 연간 526만톤의 수소를 공급하는 방안으로 제시한 방법은 △부생수소 △추출수소 △수전해 △해외생산 수소의 확대·도입 등 네 가지입니다. 2022년까지는 수도권 인근에 대규모 추출수소 생산기지를 구축해 연간 47만톤을 공급하고 2030년부터는 해외에서 생산한 수소를 국내로 들여와 연간 194만톤 공급체계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수소공급 방식은 환경오염과 공급량·경제성에서 긍정적인 전망에만 기댄 것이어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우선 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오는 부생수소의 경우 현재 약 5만톤(수소차 약 25만대에 필요한 수소량)의 여유가 있지만 석유화학 공정의 가동률과 연계돼 있어 여기서 더 늘어나기 힘듭니다. 정부는 현재 석유화학 공정에서 다른 업종에 공급하고 있는 외부 유통량 23만톤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지만 이미 수요처가 정해져 있어 이마저도 어렵다는 게 학계의 분석입니다. 안국영 수소학회장은 “부생수소를 일부러 늘릴 수는 있지만 가격이 비싸지는 게 문제”라고 짚었습니다.
액화천연가스(LNG)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인 추출수소는 생산량을 늘리기에는 괜찮은 대안이지만 생산 과정에서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유발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추출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데 구축한다고 해도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배출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LNG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향후 LNG 가격에 따라 수소 가격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한계죠. 무엇보다 현재 추출수소를 상용화해서 팔 정도의 기업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재생에너지의 남는 전력으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얻는 수전해 방식으로 이산화탄소 제로의 수소생산체계를 갖춘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확보돼 있지 않고 간헐성이라는 근본적인 한계상 안정적인 공급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됩니다. 경제성이 확보되려면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가 크게 낮아져야 하는데 정부의 예상대로 될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특히 재생에너지는 태양이 뜨거나 바람이 부는 등 자연요건이 뒷받침돼야 전력은 물론 수소도 생산 가능하기 때문에 24시간 안정적인 공급은 불가능합니다.
해외에서 수소를 수입하는 것도 제시됐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 역시 해외에 인수기지를 건설해야 하고 수소의 액화·액상 기술 등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입니다. 추후 전 세계적으로 수소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 가격이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원자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 방식은 외면한 정부=획기적인 수소 공급 방식이 없을까요. 과학계에서는 바로 원자력 기술을 활용한 수소 생산 방식을 꼽습니다. 4세대 원자로 중 하나인 ‘초고온가스로’ 4개를 붙여 하나의 발전소를 만들면 연간 14만톤의 수소를 1㎏당 3,000원 이하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발전소 7개만 지어도 정부의 2040년 수소생산 목표치(526만톤)의 20%가량을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이죠. 가격도 정부의 목표 가격(1㎏당 3,000원)보다 쌉니다. 발전소 부지 규모도 현재 최신형 원전의 절반이면 충분합니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수소생산 방식(수전해)과 달리 24시간 가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앞으로 폭증하는 수소의 기저 생산시설로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초고온가스로는 냉각제로 ‘헬륨 기체’를 사용해 후쿠시마원전에서 냉각제인 물이 급격하게 기체로 변하면서 발생했던 폭발의 위험이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안전성을 갖춘 현재 우리나라 원전보다도 안전성이 더 뛰어나다는 의미죠. 지난 2016년 10월 국책연구원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내놓은 ‘원자력 수소생산 시스템의 기술개발 현황과 전망’ 보고서에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대량으로 수소를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밖에 없다”며 “신재생에너지는 경제성이 높지 않아 상업적 수소 제조의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어렵지만 원자력은 경제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매우 높다”고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원자력연구원 연구원들이 초고온가스로의 안전성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원자력연구원
이러한 장점 덕에 초고온가스로는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친환경 수소경제 구현을 위한 마스터 플랜’에도 수소 제조의 핵심전략 중 하나로 담겼습니다. 발표 1년 뒤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정부 과제로 R&D에 착수했고 한국전력연구원이 실험실 규모에서 100일 이상 장기운전에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탈원전’을 표방한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술 개발은 실증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증사업에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계에서는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수소경제 로드맵’에 초고온가스로 상용화 계획이 일부라도 언급되기를 바랐습니다. 탈원전 정책 기조와는 맞지 않더라도 정부가 수소경제 활성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대규모로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이 기술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에서였죠. 하지만 정부는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기술을 연구하는 원자력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로드맵에 담아 초고온가스로 실증사업을 진행하면 15년 내에 상용화가 가능한데 탈원전 기조로 빠진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습니다.
산업부는 아직 이 기술을 실험실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기술이라며 기술 성장 가능성을 일축합니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상용화 시간이 길다고 보고 로드맵에 담지 않았던 것”이라며 “추후 수소 기술·개발 계획 로드맵에서는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당초 계획대로 2026년까지는 힘들더라도 2030년 중반에는 분명히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이라고 반박합니다.
◇해외에서는 원자력 수소 개발 경쟁 치열=원자력을 위한 수소 생산방식은 이미 해외에서도 개발 경쟁이 치열합니다. 미국의 제너럴아토믹스와 프랑스의 원자력청(CEA), 일본의 일본원자력연구개발기구(JAEA) 등이 대표적이며 이들은 실험실 규모의 실증을 이미 끝냈습니다. 특히 일본은 1998년부터 고온가스로(HTTR)를 운전 중이고 950도의 고온에서 50일간 운전에 성공했죠. 오는 2025년까지 이 HTTR과 연계한 수소생산 기술의 실증을 완료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중국 역시 초고온가스로 실증 원자로를 건설 중이며 올해 안에 완공될 예정입니다.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수소생산 체계도 전력 믹스의 형태처럼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부생수소·추출수소 등으로 믹스해 생산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