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6일) 방송되는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그립다 해방촌 - 서울 용산동, 후암동 편’ 편이 전파를 탄다.
남산의 서쪽 기슭에 펼쳐져 있는 동네. 해방 이후 해외에서 돌아온 교포들과 6.25 한국 전쟁 당시 월남 피난민들이 모여 살면서 붙여진 이름 ‘해방촌’은 서울 용산2가동과 후암동 일부를 포함한다. 그 가파른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소월로에서 배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열 번째 여정이 시작된다.
▲ 고단했던 시절의 유물 <108계단>에 세워진 경사형 승강기
서울의 대표적인 산동네 중 하나인 해방촌은 108 계단으로 상징된다. 까마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계단 위로 어머니들이 공동수돗물을 길어 나르며 아이들을 키웠던 고단한 삶의 유물 같은 108계단엔 어느덧 경사형 승강기가 생겨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해방촌 사람들의 숨 가빴던 그 시절을 실감해 보려 승강기 옆 108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간 배우 김영철은 그 계단 끝에서 해방촌 토박이 할아버지를 만났다. 열네 살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피난 내려와 해방촌에서 60년 넘게 살며 북녘 고향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해방촌 사람들의 애환이 느껴진다.
▲ 그때 그 사람들, 그때 그 정겨움 <해방촌 사람들>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해방촌을 지켜온 사람들의 땀방울 배인 삶의 터전들이 보인다. 동네에서 오래 장사해 누구나 안다는 해방촌 오거리 노점상 주인. 노점은 비워두고 붕어빵을 굽고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붕어빵 가게로 찾아오는 정겨운 해방촌만의 풍경. 배우 김영철도 가판대에 쓰인 안내글을 보고 붕어빵 굽는 곳을 찾아가는데, 계단 아래 비좁은 공간에서 붕어빵을 굽는 주인을 대신해 일일 붕어빵 장수가 되어보는 배우 김영철. 언제 소문이 났는지 붕어빵 가게는 몰려든 동네 아주머니들의 김영철 팬 미팅 현장이 되어버린다.
고바위 위쪽 오래된 주택가를 돌다가 잰걸음으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도 만난다. 너무 가파르고 좁아 오토바이로는 도저히 올라올 수 없는 동네. 오르막 아래 오토바이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가끔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을 때면 충분히 행복하다는 해방촌의 집배원. 그의 발걸음을 따라 아직 정겨움이 남아 있는 동네의 골목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서울 속 외국인 특구 해방촌 <코인 빨래방 카페> <프랑스 고향 빵집>
주택가 사이를 빠져나오면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영어 간판들과 거리를 지나는 외국인들. 커피를 마시면서 평화롭게 빨래를 돌리는 동전 빨래방 카페에 들어선 김영철은 마침 빨래를 하러 온 영국 청년과 마주치는데, 짧게 머무는 한국생활에서 세탁기를 사는 게 부담이 돼 동전빨래방을 이용한다는 외국인들의 생활상을 통해 해방촌만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하루 전 한국에 도착했다는 영국인 커플은 배우 김영철에게 기념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동전빨래방을 나온 김영철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또 하나의 장소는 고소한 버터향기가 솔솔 새어나오는 빵집. 크루아상과 바게트를 주로 구워 파는 해방촌의 외국인 단골 빵집이었다. 프랑스 밀가루와 버터를 사용하여 본토 빵맛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젊은 빵집 사장의 철학은 다름 아닌, 집 떠난 외국인들에게 엄마가 구워주는 것 같은 집 빵, 고향 빵맛을 느끼게 해 주고 싶다는 것. 그곳에서 드라마 ‘아이리스’의 배우 김영철을 알아보는 미국인 여성도 만나게 되는데. 그녀와 함께 맛본 프랑스식 크루아상의 맛은 과연?
▲ 추억과 그리움을 구워 파는 집 <돌아온 냉동 삼겹살>
거리를 가득 메운 피자 집, 햄버거 집, 양식당들 사이로 오래된 자전거와 공중전화가 눈길을 끄는 집이 있다. 바로 추억의 냉동 삼겹살을 파는 가게다. 오래된 달력과 80년대 음악, 추억의 양은 쟁반에 차려진 음식들과 옛날 주스병에 담긴 보리차까지. 추억을 자극하는 냉동 삼겹살집은, 용산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용산구 키드인 선후배가 운영하는 곳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에서 어릴 적 어머니가 구워주던 냉동 삼겹살 가게를 차린 두 청년. 엄마 손맛을 재현하기 위해 개발한 4가지 양념장과 곁들임 채소, 볶음밥과 청국장까지, 그 맛을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움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청국장 한 숟가락을 뜨고 말문이 막힌 김영철의 표정이 그 답을 준다.
▲ 해방촌 시계 재벌 <140개 시계가 있는 집>
신흥로를 따라 걷다가 괘종시계 소리에 고개를 들면 특이한 주택 하나가 눈에 띈다. 벽면에 괘종시계가 하나도 아니고 열 개 가까이 걸려 있다. 집으로 이어지는 복도에서부터, 안방과 거실, 베란다 벽에까지 오래된 시계 약 140개가 빈틈없이 걸려있다. 오래된 시계들을 진열해 놓고 닦고 수리하고 가꾸며 사는 남자. 가난했던 시절 깨끗한 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시계를 고치는 시계 수리공이 부러워 그 길을 걷게 됐다는 그는 유난히 애착을 가지고 모아 온 시계들이 있다. 바로 부잣집에만 있던 괘종시계와 뻐꾸기시계. 해방촌 택배기사들 사이에선 ‘시계 많은 집’으로 통하는 그 집에서 배우 김영철이 만난 건 김종원씨의 각별한 시계사랑 뒤에 숨겨진, 뻐꾸기시계 하나 달 날을 꿈꾸며 살아온 우리 모두의 그립던 옛 시절의 이야기였다.
/김호경기자 khk010@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