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대도시 상공을 날고 있는 드론의 모습. 중국 정부는 저고도 공역에서 민간용 드론이 비행할 수 있도록 일찌감치 규제를 풀었다. /사진제공=GSMA
지난 2007년 무인기(드론) 산업에 대전환이 일어났다. ‘DIY드론즈’라는 온라인커뮤니티를 설립한 미국인 크리스 앤더슨이 개인이 불과 300달러의 비용으로 조립할 수 있는 취미용 드론을 내놓았다. 그 성능이 4,000만달러대의 군용드론인 ‘프레데터’에 못지않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순식간에 취미용 드론 수요가 급증했다. 2년 뒤 앤더슨은 ‘3D로보틱스(3DR)’라는 회사를 만들어 초기 민간용 드론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3DR은 2016년부터 드론사업에서 손을 뗐다. 중국 기업 DJI가 20~30% 이상 저렴한 드론들을 쏟아내며 세계 시장의 약 70%를 장악한 것이다.
후발주자인 중국 드론업체들이 선발 미국 기업을 꺾을 수 있던 배경에는 정부의 규제해소 정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철 상명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중국은 드론·원격의료와 같은 신개념 기술이 등장하면 일단 규제 없이 기술을 수용한 뒤 이후 부작용이 발생하면 점진적으로 제도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선(先)허용-후(後)보완’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신기술이 등장하면 각 정부부처가 처음부터 온갖 규제들을 적용한 뒤 이후 점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방식(선금지-후완화)으로 접근하다 보니 기업들이 상용화에 나서지 못해 기술발전을 이루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드론 업체인 ‘안얼캉무캉콩커지’가 본사에서 자사 제품을 전시해놓은 모습. 중국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개혁에 힘입어 1위 기업인 DJI 이외에도 여러 드론기업들이 약진하고 있다. /사진제공=오토노머스미디어
중국 정부는 2003년 선전지역에서 드론 비행 관련 규제를 완화했고 2009년 ‘민용무인기항공교통관리방법’ 규정을 통해 규제완화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2012년 ‘첨단장비제조 12.5규획’을 통해 드론을 중점 육성하겠다고 선언했으며 2년 뒤 저고도 항공영역에서의 드론 비행을 공식적으로 개방했다. 2015년에는 드론 관련 주파수 배분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정리해줬다. 이듬해에는 정부의 5년 단위 경제계획인 ‘13.5규획’을 통해 드론을 비롯한 10대 산업을 중점적으로 키우겠다는 ‘중국제조2025’ 정책을 선언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드론 초창기부터 정부가 온갖 규제를 적용했다. 국내 업체들이 드론을 개발해 상품화하기 위해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 ‘전기인증’을 신청하니 지경부 측은 “우리 부처의 산업분류상 드론에 적용할 ‘산업코드’가 마땅치 않다”고 시간을 끌었다는 게 관련 분야 전문가의 전언이다.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는 드론에 대한 전파인증을 받아야 했는데 이 역시 쉽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군당국까지 끼어들어 비행 가능 공역에 대한 규제를 하고 나서면서 국내 기업들은 드론시장을 선점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뒤늦게서야 우리 정부는 중국처럼 신기술에 대해 ‘선수용-후규제’ 방식의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최근 도입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적용 받는 ‘신기술’의 범위가 특정 분야로 한정돼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분야나 산업융합신제품, 핀테크·혁신금융, 지역혁신 성장사업 등의 분야로 한정돼 있다. 규제샌드박스 적용 기간도 너무 짧다. 김태근 벤처기업협회 실장은 “규제샌드박스 적용시 2~3년간 규제 적용을 유예받지만 일반적으로 기업이 생산라인을 깔고 판매망을 확보해 신제품을 출시하기까지는 보통 1~2년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규제유예 기간을 최소한 4년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기술이 조기에 시장에서 상용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대규모 기술실증·시범사업으로 ‘판’을 깔아줄 필요가 있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광저우가 자율주행 택시시범운행 사업을 통해 자율주행자동차 산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개별기업 차원에선 추진이 어려운 대규모 스마트시티 사업의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테스트베드 사업 추진이 필수적이다. 스마트시티 분야에 적극 진출을 모색 중인 국내 대형 정보기술(IT) 업체 임원은 “스마트시티사업의 경우 국내에서 대규모 사업실적을 쌓아야 해외에 진출할 때 발주처의 ‘적격심사’를 통과할 수 있는데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시티는 대부분 중소 규모”라고 전했다. 그 중에서 규모가 큰 스마트시티 구축 시범사업도 세종시 5-1구역 83만평, 부산에코델타 부지 내 66만평 규모여서 개별 사업 기준으로 100만평 이상의 스마트시티 건설실적을 쌓을 수 없는 상태다. 대규모 스마트 신도시 추진이 어렵다면 기존의 도시재생사업을 활용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임원도 “정부가 추진한 도시재생사업지역은 2017년에 68곳, 2018년에 99곳인데 그중 스마트시티 개념이 접목된 곳은 각각 5곳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단순 토목건설 개념의 사업이었다”며 “이를 스마트시티 시범사업으로 전환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신기술에 대한 국제적 제도정비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이 창작한 콘텐츠나 빅데이터를 활용해 가공한 콘텐츠, 서비스 등에 대해 누가 지적재산권을 가지는지를 놓고 한중일, 미국, 유럽연합(EU) 내에서 서로 상이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이와 관련한 국제적 합의를 선도적이고 주도적으로 이끌어내는 게 필요하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