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항일무장투쟁의 요람, 신흥무관학교가 남긴 유산

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방송 화면 캡처

오늘(27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배틀그라운드! 신흥무관학교’ 편으로 독립전사들을 양성한 신흥무관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전파를 탄다.

1919년 만주 길림, 13명의 독립운동가가 의열단을 창단한다. 이후 의열단은 단장 김원봉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는데...이때 의열단원 대부분 전문 군사훈련을 받은 전사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훈련받은 곳은 어디였을까? 그곳은 바로 무장 항일투쟁의 요람, 신흥무관학교!

▲ 경축! 신흥무관학교를 세우다

일제 탄압이 심해지자 독립운동가들은 망명을 결심한다. 망명지는 가깝지만, 일제의 간섭을 피할 수 있는 서간도! 중국인의 텃세와 갖은 장애를 넘어 독립운동가들은 허름한 옥수수 창고를 매입한다. 학교명은 ‘신흥강습소’. 중국의 감시와 견제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신흥강습소는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갖추고 엄격한 훈련을 시행했는데.. 군자금이 없어 한겨울에도 여름옷과 짚신을 신고 훈련을 한 생도들!

▲ 청산리 전투 승리의 비결?


청산리 전투에도 신흥무관학교가 있었다?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었던 북로군정서에는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많았는데...신흥무관학교 교관들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 무관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남만주 3천’으로 유명한 지청천과 김경천은 일본의 전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과연 그 비법은? 청산리 전투의 첫 승, 백운평 전투를 통해 이들의 활약을 되짚어본다.

▲ 신흥무관학교가 남긴 유산

한 기수가 60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진 신흥무관학교! 점점 심해지는 일제의 감시로 결국 1920년 문을 닫는다. 하지만 신흥무관학교가 배출한 3,500여 명의 독립군은 무장투쟁의 기반이 된다. 학교는 폐교됐지만, 이후 독립군, 의열단 등 무장 항일투쟁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신흥무관학교의 맥은 광복군, 대한민국 국군으로 이어진다.

/김호경기자 khk0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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