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세계적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지난해부터 투자 이미지 변신에 나섰다. 블랙록이나 뱅가드 등 글로벌 큰손의 자금을 받기 위해 단기 투자보다 장기투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자본시장의 한 축이 된 엘리엇과 행동주의 펀드는 매처럼 목표 기업에 날아들어 주식을 다량 취득하고 단기간에 다양한 요구 조건을 쏟아낸다. 최대한 기업을 압박해 주식 가치를 급등시키거나 대규모 배당을 챙겨 수익을 냈다. 이런 투자 문화를 주도한 곳이 엘리엇과 칼 아이칸 같은 곳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세계적 인덱스 펀드를 운용하는 블랙록이나 뱅가드 등의 기관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엘리엇도 단타보다는 장기투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적 펀드 연구기관인 모닝스타의 집계에 따르면 인덱스 펀드에 몰린 자금은 약 10조 달러에 이른다.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펀드는 주주총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원하는 바를 얻는다. 하지만 지나친 단기 투자는 기관투자자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엘리엇은 그동안 보였던 호전적인 모습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월가에서는 엘리엇의 분석을 인덱스펀드나 기관들은 매우 신뢰한다”며 “엘리엇이 지적하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투자자들에 보낸 신년 레터에서 “경제 상황이 한층 더 예민해진 2019년은 장기적 안목의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기업의 거버넌스, 이사회의 다양성, 기업 전략과 자본의 분배, 장기적 관점의 투자를 유도하는 보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관 투자가들이 장기 투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투자한 기업의 본업을 발전시키고 수익을 올리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좋은 예다. 지난해 초 지배구조 개편 작업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뉴욕 기관투자자들을 만나 지배구조 개편안을 지지해 달라고 설득에 나섰지만 되레 항의만 받았다. 본업인 자동차 산업에 대한 투자가 아닌 10조5,500억원을 주고 대규모 부동산 자산을 취득한 점이 문제가 됐다. IB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최근 정의선 수석 부회장 체제를 완료했다고 하지만 해외 투자자들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행동주의 펀드든, 기존 경영인이든 본업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는 쪽의 손을 들어준다”고 말했다.
KCGI 역시 행동주의펀드로 자리잡으려면 장기 투자자 관점에 무게를 두고 주주 제안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송현동 토지나 제주도 호텔 등 유휴 자산 매각이나 자산 재평가 등은 이런 점에서 정당성을 얻는다는 지적이다. IB업계 관계자는 “KCGI가 5년 계획안을 내놨지만 장기투자하겠다는 의지와 근본적으로 항공업을 레벨업 시키겠다는 계획을 함께 제시해야 주총에서 기관 투자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도원·임세원기자 theo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