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국가재정법은 국고 지원액이 300억원 이상인 사업을 추진하려면 사전에 예타를 거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몇몇 예외조항이 있지만 이번처럼 여러 사업을 무더기로 면제하는 것은 예산낭비 방지와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법 제정의 취지에 어긋난다. 지역마다 숙원 SOC 사업을 제출하라고 주문한 뒤 정부가 선심 쓰듯 지역별로 최소 1개씩 추려내는 방식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럴 거면 굳이 국가재정법에 예타 의무화 조항을 둬야 할 필요가 없다.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워 경제적 타당성을 깡그리 무시하면 국민 혈세를 낭비할 우려가 매우 크다. 그런 경험이 한두 번도 아니다. 26조원을 퍼붓고 해마다 수천억원씩 관리비용이 드는 4대강 사업이나 네 차례 대회를 치르고 애물단지로 전락한 전남 영암의 포뮬러원(F1) 경기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예타를 통과하고도 세금만 축내는 SOC 시설도 적지 않은 마당에 최소한의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이들 사업이 앞으로 재정을 얼마나 축낼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물론 예타 심사에서 경제적 효율성 비중이 높아 지방 사업의 타당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예타 기준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이번에 선정된 사업의 면면을 보면 시간을 다퉈야 할 정도로 시급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처럼 무리수를 동원하니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라는 의구심이 들기에 충분하다. 나쁜 선례가 아닐 수 없다. 다음 정권에서도 전례를 들어 똑같은 방식으로 지역별 나눠먹기식 예타 면제를 추진하겠다면 막을 명분이 없다. 재정준칙이 허물어지면 나라 곳간이 거덜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