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원 시그널팀 기자
“보건복지부가 일할 생각이 있는 건지 의심스럽네요.”
국민연금의 한진그룹 경영 참여는 대통령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강조하면서 당장 변화가 일 듯했다. 기업은 경영침해라며 우려를 쏟아냈고 시민사회에 민간펀드까지 나서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도 찬반으로 갈렸다.
정작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는 일주일 새 두 번 회의를 열어 경영권에 참여하지 않고 조양호 회장의 이사 연임도 결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이 경영에 참여하면 ‘10%룰’에 따라 단기차익을 반납해야 하니 비용이 크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조 회장의 이사 연임에 찬반을 결정하지 않는 것은 한진 측이 아직 조 회장의 이사 연임을 제안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납득하기 어렵다.
10%룰은 10% 이상 지분을 취득한 주주가 경영에 참여하면 6개월 내 단기차익을 반환하는 제도다. 그러나 장기투자자인 국민연금이 단기 차익 때문에 경영 참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연금은 1년 투자 수익률이 나쁠 때마다 장기 투자자이므로 3년 이상 수익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같은 논리라면 경영 참여 후 6개월 이내 손실이 나면 팔면 되고 이익이 나면 6개월 후 가져가면 된다. 국민연금만을 위해 단기차익 반환에 특례를 주면 일반 투자자나 기업이 감내할 비용이 더 클 것이다.
한진이 조 회장의 이사 연임을 제안할지 여부를 모르니 결정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복지부가 밝혀온 주주권 행사 방침을 무색하게 한다.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게 지난 2017년이고 국민연금이 본격 도입한 것은 지난해 7월이다. 당시 복지부는 한진그룹에 대해 필요하면 경영 참여도 하겠다고 말했다. 그 후에도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위한 원칙·지침·가이드라인을 만들며 강력한 메시지를 줬다. 오히려 일부 수탁자책임위원이 지난해 말 주주권 행사를 준비하는 논의를 해보자고 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충분히 준비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 와서 모르겠다는 식이다.
국민연금의 한진그룹 경영 참여는 어떤 결론이 나든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논의가 없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바깥에는 뭔가 할 것처럼 오해를 준다는 점이다. 지금대로라면 복지부는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을 추구하지도 재벌을 개혁하지도 않고 그냥 복지부동한 민낯만 드러낸 것뿐이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