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는 통계조작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국정책임자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통계는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필수적인 수단이다. 정책과 법안의 근거가 된다는 점 때문에 영국에서는 한때 통계가 ‘정치산수’로 불리기도 했다. 문제는 모든 정부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그럴듯한 장밋빛 통계를 기대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정권에 따라서는 입맛에 맞게 결과를 분식하고 수치를 왜곡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일본 정가는 연초부터 정부의 통계부정 행위가 드러나면서 발칵 뒤집혔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매월 발표하는 근로통계가 무려 15년간(2004~2018년) 잘못 조사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2012년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직후 본격 시행한 ‘아베노믹스(아베 정권의 경기부양책)’의 성과도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재산출 결과 아베 정권이 자랑해온 지난해 임금상승률은 실제보다 부풀려졌고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각종 급여와 보험금이 깎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로 인해 추가해야 할 예산만도 무려 795억엔에 달한다.
여기에 총무성이 국가기간통계 56종을 점검한 결과 절반에 가까운 22종에서 부정이 확인되면서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 정계는 이번 사태가 2007년 제1차 아베 정권의 몰락을 초래한 ‘사라진 연금’ 사건의 전철을 밟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국민들이 낸 국민연금 납부 기록이 정부 데이터에서 사라져 일대 혼란을 초래한 당시 사건은 1기 아베 정권이 몰락하고 자민당이 민주당으로 정권을 넘겨주는 계기가 됐다. 야권은 이미 이번 통계부정 문제를 ‘사라진 지급액’ 사건으로 명명하고 아베노믹스가 실상은 통계조작의 결과일 뿐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중국은 이미 통계조작과 관련해 엄청난 위험성을 가진 나라로 꼽힌다. 중국에서는 “통계를 믿으면 바보”라고 할 정도로 국가 통계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 특히 지방정부들의 통계조작과 국내총생산(GDP) 부풀리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지방에서는 고위관료들이 인사평가를 좋게 받고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통계조작에 손을 대는 것이 일종의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과장된 통계 인용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 경제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각종 통계와 수치를 과장해 인용하는가 하면, 국경장벽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왜곡된 통계를 앞세워 위기감을 부각한다. 인용하는 수치가 맞는지 여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는 “진실과 거짓의 게임이 아닌 정치 게임”일 뿐이다.
통계조작은 당장 정권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거나 위기상황을 은폐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자 달콤한 유혹이다. 들통이 나더라도 정권을 위협할 만한 파괴력을 갖는 경우는 드물다. 통계부정이 당장 국민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계부정 사실 발각이라는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오히려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때로는 잠깐의 눈속임이 국가의 운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통계조작을 일삼는 정부는 대내외적인 신뢰를 상실하는 것은 물론 장기간에 걸쳐 은폐했던 위기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정권 붕괴와 나아가 국가부도 사태로 내몰리는 등 처참한 말로를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역사상 통계조작이 국가를 무너뜨린 최초의 사건으로 알려진 것은 1781년 프랑스 재무총감이던 자크 네케르가 세계 최초로 국가재정 상태를 민간에 공개했을 때다. 스위스 은행가 출신이었던 네케르는 재무총감이 국부를 빼돌리는 자리라는 정치적 비판에 시달리다 결국 프랑스 정부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분식회계로 재정상태를 속여왔는지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프랑스 정부 경상지출의 10분의1에 달하는 2,570만리브르가 궁정과 왕실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프랑스 시민들의 분노는 프랑스 대혁명의 직접적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남유럽 재정위기의 진앙이었던 그리스가 통계조작의 처참한 후폭풍을 맞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리스는 2000년 유럽 단일통화권인 유로존 가입 기준을 맞추기 위해 연간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6%로 절반 이상 낮춰 발표했다. 이 같은 비밀은 2009년 사회당 집권 이후 과거 정권의 재정통계가 엉터리였다는 고백으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후 유럽연합(EU)의 실사 과정에서 그리스의 실제 연간 재정적자가 무려 13.6%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그리스의 대외신인도는 땅에 떨어지고 유럽 전체를 뒤흔드는 국가부도 위기가 그리스를 덮쳤다.
아르헨티나도 수년간의 통계조작으로 가려온 경제 실상이 드러나면서 결국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2003~2015년 재임)은 방만한 정부 지출을 위해 돈을 마구 찍어내고 이로 인해 물가가 치솟자 2006년 말부터 노골적으로 통계조작을 자행했다. 2007년 이후 정부가 발표한 물가상승률은 평균 10% 수준이었으나 민간 조사기관들은 실제 물가상승률이 2~3배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수년에 걸친 통계조작이 2015년 대선에서 12년 만의 정권교체로 이어진 것은 물론 재정파탄 위기로 국가 경제를 내몰았다.
이렇듯 통계가 정치인들에게 ‘오기의 희생양’이 되는 일이 빈발하자 일부 국가에서는 통계조작 방지를 위해 통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립기구를 마련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은 2007년 통계청을 ‘내각의 지휘를 받지 않는 의회 산하 독립기구’라고 법률에 명시하며 독립성을 강화했고 프랑스도 2008년 ‘통계 산출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법률에 못 박았다.
통계학계의 오랜 격언에 따르면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쟁이들이 통계를 이용할 뿐이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