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거리로 내쫓길판"...재개발 바람에 용산전자상가 상인들도 '젠트리피케이션'

나진상가 운영사 지분 매각 앞두고
점포 30여곳에 계약갱신 거절 통보
나머지 점포들도 연내 계약 만료
건물관리 안돼 난방 중단·정전도

서울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이 14일 나진상가 앞을 오가고 있다. /김인엽기자

“20~30년씩 이 바닥에서 먹고살던 사람들인데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어디로 가라는 건지 막막합니다. 크고 작은 매장이 600개에 딸린 직원만 족히 2,000명을 넘는데 한순간에 거리로 내쫓길 판입니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퇴거조치를 내린다면 집단행동도 감행할 것입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 일대에 최초로 세워진 나진전자월드(나진상가)가 재개발 바람으로 상가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하면서 기존 상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상가 운영사인 나진산업은 지분 인수를 앞두고 소규모 매장들을 정리해 대형 매장들을 입점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상인들이 집단반발에 나서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13일 나진상가상인연합회 등에 따르면 나진산업은 최근 매장 32곳에 임대차계약 갱신 거절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오는 3월 계약이 만료되는 매장은 점포를 비워달라는 통보다. 지난해 4월 이후 1년 단위로 임차계약을 한 나머지 점포들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상인들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수십년간 장사해온 가게에서 갑자기 내쫓기게 됐다며 집단반발하고 있다.


나진산업 측은 매각과 별개로 대형 매장을 유치해 시설 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상인들은 “사모펀드에 회사를 넘기기 전에 세입자들을 정리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나진산업은 상인들이 임대료를 올리겠다거나 점포를 이전하겠다고 이야기해도 무조건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87년 세워진 나진상가는 면적만 2만9,752㎡에 달한다. 총 10개 동, 1,600여개의 점포로 구성된 상가에는 컴퓨터·가전·방송 및 영상장비 관련 소매점부터 중소업체 본사 매장 등 625개 기업이 입주해 있고 상가의 22.3%는 공실로 남아 있다. 나진상가에 입주한 상인 대부분이 짧게는 10년부터 길게는 30년 가까이 영업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른 계약갱신요구권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진산업은 2017년 설립자가 사망하면서 자녀들의 상속세 부담 등을 이유로 지분 매각을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서부T&D 자회사인 오진상사와 사모펀드 운용사인 IMM인베스트먼트가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이중계약에 따른 법정 분쟁이 진행 중이다. 소송이 장기화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상인들에게 돌아갔다. 나진산업은 지난해 11월에는 상가 공동난방 운영을 중단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전력을 공급하는 고압전선에 불이 붙어 상가 1개 동이 정전되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나진상가 매각으로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사업도 불투명해졌다. 서울시는 2017년부터 나진상가를 포함한 용산전자상가를 도시재생지역으로 선정하고 청년창업 플랫폼으로 탈바꿈시키는 ‘와이밸리(Y-Valley)’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부지와 관련 종사자 등 사업계획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나진산업이 서울시에 도시재생 상생협약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나진산업 측은 “일부 매장에 계약갱신불가를 통보한 것은 대형매장을 유치해 상가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임대료를 연체하고 상가 규칙을 위반한 매장들에 수차례 내용증명을 보내고 업무 요청을 보낸 후 계약 만료를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최성욱·김인엽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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