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소송의 쟁점은 기업의 경영상태에 따른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적용 여부였다. 시영운수의 경우 통상임금에 따른 추가 부담이 7억8,000만원으로 ‘매출액의 4%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경영상 어려움을 인정받지 못했다. 대법원은 경영지표로 매출액과 이익잉여금을 중시한 데 반해 하급심에서는 자본금과 순이익 규모를 따지는 등 제각각 달라 기업들로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다. 게다가 노조가 단체협약 합의까지 번복해 통상임금을 요구했는데도 대법원에서 예측하지 못한 경영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1·2심 판결을 뒤집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판결은 신의칙 원칙을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점에서 산업계에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은 당장 다음주로 예정된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2심 판결 등 줄줄이 걸린 소송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올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오죽하면 기아차 사측이 미래 연구개발(R&D) 투자와 고용이 위축된다며 “통상임금 논란을 중단해달라”고 노조에 부탁하고 나섰겠는가. 산업계에서 근로자의 권익도 중요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어려운 경영환경까지 아우르는 객관적인 판단을 법원에 호소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러잖아도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의 진보적 성향이 짙어지면서 과거 판례를 뒤집는 사례가 잦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이 특정 성향으로 흐르면 법치의 신뢰와 안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정치권도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을 제때 마련하지 않아 혼란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회는 하루빨리 합리적 기준을 내놓아 통상임금 분쟁에 따른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