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8월, 여름 휴가철임에도 여행객 1명 없이 한산한 전남 무안국제공항 청사 2층의 모습. /연합뉴스
지방공항은 선거 때가 되면,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질 때면 여지없이 등장했다. 입지만 확정되면 수조원의 자금이 투입되니 지역에는 단비 같은 대형 사업이었다. 10년이 넘는 건설 기간 동안 경제적 파급력도 상당하다. 하지만 막상 들어서고 나면 매년 적자에 허덕이는 게 현실이다. 과대 포장된 수요 전망으로 지방에 우후죽순 공항이 들어서면서 지방 공항들이 공멸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받은 새만금 신공항 예정지에서 차량으로 1~2시간 거리에는 무안국제공항과 청주공항이 있다. 연간 수용 능력이 510만명인 무안국제공항의 지난해 이용객은 32만명에 그치면서 매년 100억원 안팎의 적자를 내고 있다. 인근에 새로운 국제공항이 들어오면 상황이 악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다른 지방 공항의 사정도 비슷하다.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14개 지방 공항 중 김포·김해·제주·대구를 제외한 10곳이 적자다. 그나마 대구공항도 2016년에서야 흑자 전환했다.
그런데도 지방 공항을 둘러싼 경쟁과 논란은 여전하다. 이미 김해공항 확장으로 매듭이 지어진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최근 입지를 두고 또다시 불이 붙었고 새만금 신공항, 제주 제2공항도 지역에서 뜨거운 감자다. 정치권이 불을 지피고, 지역 주민들과 이해관계자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에 나서고 있다.
왜 공항일까.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지방 공항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이유는 막대한 경제효과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는 요즘 같은 때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이뤄지면 건설기간 동안의 지역 일자리 창출과 건설 사업 투자로 인한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역 민심을 잡기에는 최고의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역 경제 상황에 대한 대책이 부족한 상황에서 신공항 건설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부산을 방문해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영남지역의) 의견이 다르다면 (검증 기구를) 국무총리실 산하로 승격해 검증 논의를 할 수도 있다”고 발언한 것 역시 부울경 표심 잡기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총선의 전략적 요충지인 부울경 민심이 이탈하자 결국 신공항 재추진 카드를 내비쳤다는 것이다. 지역 민심이 흔들릴 때마다 나오는 이른바 ‘공항 정치’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 조사에서 지난해 6·13 지방선거 직후 부울경 지역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71.6% 육박했지만 이달 첫째 주에는 40.2%로 30%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민주당 지지율도 같은 기간 55.4%에서 34.4%로 하락해 자유한국당(38.6%)에 역전당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동차·조선 등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기업들이 타격을 받은 데다 최근 친문 핵심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 구속된 영향이 컸다. 부산 지역에서는 이미 문 대통령의 발언 이후 광역단체가 아닌 총리실에서 김해신공항을 검증하면 가덕도 신공항 추진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기대를 키우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이슈는 때마다 등장해 지역 민심을 들었다 놨다. 처음으로 전면에 등장했던 것은 2007년 대선 때였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급증하는 항공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동남권에 새로운 공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11년 3월 국토교통부는 경제성 미흡으로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동남권 신공항 이슈는 사라지지 않고 거물급 정치인들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됐다. 지난 2012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맞붙은 대선에서 두 후보 모두 영남지역의 신공항 재검토를 공약하면서 다시 부상했다.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 등 각 지자체들의 유치 경쟁이 가열된 상황에서 2016년 6월 결국 정부는 기존 김해공항에 활주로를 늘리는 김해공항 확장안을 발표했다. 당시에도 경남과 부산 민심을 잃지 않으려는 교묘한 정치적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입지 선정 연구용역을 맡았던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슈발리에 수석 엔지니어도 “정치적인 부분을 배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공항 건설로 지역 민심 잡기에 나선 사례는 최근에 또 있었다. 정부는 설 명절을 앞둔 지난달 30일 전라북도 군산의 새만금 신공항 건설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기로 발표했다. 지난해 9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새만금공항 건설은 지반이 약한 탓에 공사비가 많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가까운 무안공항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반대입장을 보였지만 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 경제성은 뒷전이 됐다.
제주 제2공항은 입지 선정 과정에서 대한 재조사와 국토부의 제주 현지 설명에도 부실 추진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당초 착공 목표 시기는 2017년이었지만 환경단체들과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지는 등 지역 정치 쟁점으로 부상했고,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 공항으로 인한 갈등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권은 5년마다 바뀔 수 있지만 정부는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며 “경제성을 무시한 채 지역민들의 입김에 휩쓸려 지방공항을 양산한다면 결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광우·송종호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