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경인선


1883년 제물포항이 개항되자 조선은 철도 건설의 필요성을 느꼈다. 전국에서 올라온 물자를 선박을 이용해 한양으로 운반하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은 재정사정이 좋지 못했다. 이때 조선 철도 부설에 관심을 표시한 나라가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은 1887년 조선에 ‘철도 신설계획 요청’ 공문을 발송하는 등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냈다. 마침내 고종은 1896년 미국 기업가 제임스 모스에게 경인철도 부설권을 줬다. 모스는 한국개발공사를 설립한 뒤 1897년 3월22일 제물포 우각현(지금의 도원역 부근)에서 기공식을 열었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에서 “조선이 정치적으로 어지럽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미국 투자자들이 몸을 사리자 모스는 자금난을 겪게 된다. 결국 모스는 1898년 170만2,452원75전에 사업권을 일본인 소유의 ‘경인철도합자회사’에 넘겨주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1899년 9월18일 제물포~노량진 간 33.2㎞의 철도가 개통됐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다.


경인선은 하루 상행·하행 각각 2회씩 운행됐다. 시속 19.8㎞로 달리면서 제물포~노량진을 1시간40분 만에 오갔다. 사람이 이용하는 요금은 상등석 1원50전, 중등석 80전, 하등석 40전이었다고 한다. 당시 쌀 한 가마니 값이 4원이었다고 하니 만만찮은 가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00년 7월8일에는 노선이 경성역(1905년 이후 서대문역으로 변경)까지 연장됐다. 연장선의 최대 난공사는 한강철교였다. 홍수와 혹한으로 몇 차례 공사가 중단된 끝에 270일 만에 완공됐다고 한다. 1965년에는 인천~영등포 구간, 1969년에는 영등포~서울역 구간이 복선화됐다. 1974년에는 서울 지하철 1호선과 연결되면서 수도권 전철로 변경됐다.

모스에게 철도 부설권이 넘어가기 8년 전인 1888년 한미 간에 경인선 부설 논의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작성한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에 따르면 1888년 미국 법관 ‘딸능돈’ 등이 철로와 가스등을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 건은 박정양 주미공사가 우리에게 불리한 조건이니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고종에게 건의하면서 무산됐다. 만일 이때 미국에 부설권을 넘겼으면 일본의 한반도 침탈을 조금이라도 억제할 수 있었을까. 역사는 가정이 없는 법이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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