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회령에서 1935년에 태어나 짧으나마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고 국가 주도의 압축성장을 경험한 배우 이순재(사진)는 근현대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중은 그에게 배우 외에도 한 나라의 어른으로서, 멘토로서의 역할까지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30세대는 현재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하고 고도성장의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40대 이상 역시 삶이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른’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은 이들은 비단 젊은이들뿐만이 아니다.
그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이날 인터뷰 중 가장 긴 침묵이 흐른 후 대답이 돌아왔다. “모두 태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 쉽게 말해서 불륜으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태어난 데는 이유가 있고, 조건에 개의치 말아야 한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객관적인 조건에 의해 좌우될 수는 있지만 그것보다 본인이 결정하기에 달렸다고 본다. 인간이라는 것은 모두가 차별화돼 있고 각자 사고가 다르다. 자기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그는 주변인들 대부분이 배우를 반대했던 자신의 청년 시절 이야기도 들려주면서 청년들에게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으라고 권고했다. “친척들을 비롯해 열에 아홉은 배우는 ‘딴따라’라고 해서 반대했다. 돈을 벌 수 없는 직업이라는 것을 알고도 시작했다.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는 길을 택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가던 길도 아니다 싶을 때는 돌아서는 용기도 필요하다. 배우 동료·후배 중에 이런 친구들이 있다. 얼굴은 정말 예뻤는데 연기를 잘 못해서 밀리고 밀리다가 퇴출당했다. 몇 년 후에 홍콩에서 만났는데 사업을 크게 해서 성공했더라. 사업 수완이 있는 것이다. 또 평상시에는 잘하다가 카메라 앞에만 서면 울렁증이 있어 대사를 다 잊어버리는 후배도 있었다. 일을 관둔 그를 몇 년 후에 봤는데 백과사전 직판장을 하고 있었다. 30년 전에 당시 4억원을 벌었다고 하더라. 지금은 더 부자가 됐을 것이다.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이야기한다. 연기로 들어왔지만 연출이 더 맞는다는 확신이 들면 연출을 해라. 연기를 아는 연출과 모르는 연출은 다르다.”
우리의 미래를 담당할 청소년들에게 그는 “진로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학력 등 외부 조건에도 신경을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사업가가 나중에 사업이 ‘대박’이 나서 500억원대 평가를 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기사를 봤다. 고등학교 때 좀 공부를 못 하면 어떤가. 확실한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의지를 가지고 임한다면 기회는 열려 있다고 본다. 정보기술(IT) 등 가능성이 많지 않은가.”
이씨는 네 살의 어린 나이에 회령을 떠나 평생 서울에서 산 ‘서울 사람’이지만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남북평화 바람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다. 만약 그의 생전에 통일이 된다면 그는 일제 강점기, 분단국가, 통일 한반도를 모두 경험한 몇 안 되는 한국인이 될 수도 있다. “할아버지 따라서 운 좋게 넘어왔다. 너무 어릴 때 서울로 와서 고향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아름다운 도시이고 문화도시라고 한다. 밀이 많이 난다고 들었다. 두만강변에 있어서 영화의 발상지라고 보면 된다. 나운규 선생 등이 회령 출생이지 않은가. 거기서 작품도 많이 했다. 통일이 되면 당연히 가보고 싶다. 우리 종가가 있는 곳이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김리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