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워치] 소송·비리로 얼룩진 단체장, 檢에 찔리다…반복되는 흑역사

광주광역시 모 농협 조합장 A씨 부부가 다음달 13일 열리는 제 2회 전국도시조합장건서를 앞두고 조합우너들에게 돌린 현금./광주=연합뉴스

선출직 민간단체장이 지나온 길은 영광보다 상처가 많다. 반대세력의 고소·고발에 따른 각종 민형사 소송이나 비리에 따른 검찰 수사와 사법처리로 얼룩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협중앙회장의 경우 선출직으로 바뀐 뒤 당선된 초대 회장부터 3대 회장이 모두 감옥에 갔다. 농협중앙회장은 원래 정부 임명직이었다. 그러다 선출직으로 바뀐 것은 ‘서울의 봄’ 이후 직선 대통령이 나온 이듬해인 지난 1988년이다. 농민의 자율적 협동조합이라는 농협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민선으로 바뀌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민선 중앙회장들은 각종 비리 의혹에 얽히면서 줄줄이 구속됐다.

첫 민선 회장을 비롯해 2대 회장이 법의 심판대에 섰다. 비자금을 조성한 뒤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업무추진비를 횡령한 혐의다. 뒤를 이은 3대 회장은 부동산 매각과 금융사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를 적용받았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은 덕분인지 4대 회장은 구설이 있었지만 법정에 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측근 25명이 기소됐다. 농민을 대표하는 최고의 자리였지만 끝이 좋지 않았던 셈이다.


자정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체 조합장이 투표하는 직선제에서 대의원 조합원만 유권자가 되는 간선제로, 연임에서 단임으로 전환한 것 외에 내부적으로도 정치권과 연계된 비리 의혹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적지 않았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제도적 개선과 내부 자정 노력 등으로 농협의 비리는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다”며 “하지만 중앙회 자체가 거대한데다 전국 농협까지 관할하는 전국조직이다 보니 근본적인 비리근절에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최근 농협중앙회에서는 내심 직선제와 연임제 재도입을 바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공청회에서 농협 관계자는 “대다수 조합장이 투표에 참여하고자 하는 만큼 직선제 전환이 필요하고 4년 단임이어서 중장기 과제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우회적으로 연임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현행 단임제가 현 회장에서 처음 적용됐고 특별한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단임제는 당시 사회·경제·정치적 상황을 반영해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현재 그 상황을 다시 판단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는 농협처럼 심하지 않지만 회장의 수난이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현 회장인 박성택 회장은 2015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형이 확정되기 전에 임기가 끝난다. 사실상 재판을 받다 임기를 마치는 꼴이다. 앞서 박상희 전 회장은 1995년 선거 과정에서 금품을 뿌렸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고 김용구 전 회장도 2005년 현금제공 등의 불법행위로 검찰 수사를 받은 끝에 무혐의 처리됐다.

협동조합 운동은 당초 규모와 상관없이 조합원 1인이 한 표를 갖는 생산자 모임으로 유럽에서 시작됐다. 공동구매·공동판매 등으로 조합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되 지분만큼 의결권을 갖는 주식회사와 달리 모두가 동일한 의사결정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로 인식됐다. 그러나 한국의 협동조합은 1961년 농협법 제정 이후 일종의 ‘관제조합’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보니 간판은 협동조합이지만 농협중앙회·중기중앙회처럼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단체가 생기고 말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협동조합 운동의 본질은 잊고 거대한 단체의 회장이 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하다 보니 회장들의 수난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회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중기중앙회 모두 이미 누구도 손댈 수 없을 만큼 권력화된 면이 있다”면서 “회장을 향한 조합장들의 욕망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비방과 모략·비리로 기소되고 재판받는 흑역사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형윤·맹준호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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