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학회 진단] 바이오는 '제2 반도체'...초격차 DNA 심어야

☞L자형 침체 돌파구는
4차 산업혁명 뒤늦은 추격보다
비교우위 달성 분야에 역량 집중
의료 공작기기 등 주도권 잡아야
외국인력 도입, U턴 기업도 확대
'기술 축적의 시간' 되찾아야 성장

‘2019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이근 서울대 교수가 ‘슘페터학파의 국가혁신체제론과 한국의 혁신성장’을 발표하고 있다. /한민구기자

우리나라가 이미 주도권을 놓친 4차 산업혁명을 뒤늦게 추격하기보다는 다른 나라와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바이오산업 등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유턴 기업을 늘려 한국을 다시 생산기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15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2019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내용의 국내 경제 성장동력 제고 방안을 쏟아냈다. 발표 후 열린 토론회에서도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한국 경제의 활력을 되살릴 방법을 두고 학자들 간 치열한 격론이 벌어졌다.

먼저 제조업 부활을 위해 바이오의약품 등 비교우위를 달성할 수 있는 분야에 노력을 기울이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슘페터학파의 국가혁신체제론과 한국의 혁신성장’을 발표한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후발주자가 되는 것보다는 바이오의약품 등 우리만의 특성화된 산업 분야를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의 이론은 4차 산업혁명 중심의 첨단산업 육성정책에서 한국이 이미 주도권을 잡을 기회를 놓쳤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어떤 산업을 키워야 할까. 이 교수는 “휴대폰 같은 정보기술처럼 진입장벽이 낮아 중국에 추격당하기 쉬운 산업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며 순환주기가 길고 융복합·암묵지(학습과 경험으로 체화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지식) 기술에 기초해 한번 주도권을 잡으면 쉽게 추월당하지 않는 분야를 육성해야 할 산업으로 꼽았다.


구체적인 분야로는 △바이오의약품 △부품소재 △의료기기 △공작기계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 산업들은 꾸준히 기술능력이 증대되고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바이오의약 부문은 정부 지원만 집중적으로 이뤄지면 중국과 격차를 유지하는 우리의 차세대 선도산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의약 부문은 지난 2000년대부터 정부 지원을 토대로 연구개발(R&D)이 시작된 후 15년이 넘은 최근에서야 눈에 띄는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유럽 선발 제약사들이 합성의약품을 많이 생산한다는 점에서 전통기술과 다른 바이오의약은 한국 같은 후발주자에 ‘기회의 창’이라는 게 이 교수의 판단이다.

국내 산업이 기술 축적의 기회를 다시 찾기 위해 외국인 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토대로 유턴 기업을 늘려 한국을 다시 생산기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잇따랐다.

전용일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의 고용과 성장’ 발표에서 “2022년 이후 고용 총수요 증가가 고용 총공급 증가를 추월하면서 고용 수급의 불균형이 해소되지만 중장기적으로 인력 부족이 발생하기 시작한다”며 “경제활동인구의 증가, 생산가능인구의 확충, 외국 인력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의 발언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힘’으로 축적시간을 압축해야 한다는 주장에 기초한다. 생산공정을 국내로 되돌리고 생산적인 기업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기술혁신을 축적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한국이 기술강국으로 우뚝 서고 경제성장을 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기업은 단순한 물리시설이 아니라 ‘가치사슬’의 생태계에서 기술역량과 노하우를 담는 그물망이고 혁신적 지식의 기반”이라며 “국내 생산기반에서 국내외 인재가 유치된다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국내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면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제조업 단순노무직에 집중된 외국인 근로자 고용분포도 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외국인 인력 문제에 대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내외국인 임금 차등화나 비자발급, 체류절차 간소화 등의 추진절차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세션 발표가 끝나고 이어진 토론회에서도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참가자들의 발언이 계속됐다. 최현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들어보면 처음 나오는 것이 노동 관련 규제”라며 “외국으로 떠나는 기업을 붙잡고 되돌리기 위해서는 기업의 인력비용 부담을 줄여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부장도 “정부의 규제정책이 산업 경쟁력이나 기초까지 뿌리 뽑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신산업 육성을 위해서라도 공공인증·규제 등을 통폐합해 효율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순구·임진혁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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