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제공
17일 방송되는 KBS1 ‘다큐 공감’에서는 ‘어매들의 노래방’ 편이 전파를 탄다.
전남 진도 소포리에는 아주 특별한 노래방이 있다. 마이크와 노래방 기기 대신 북과 함지박이 놓인 노래방. 이곳에선 매일 저녁, 소포리 어매들의 한과 삶이 담긴 노랫가락이 울려 퍼진다.
▲ “노래가 없었으면 우울증 걸려 죽었을지도 모르제“
진도 소포리에 사는 한남례(86) 어매네 집 사랑방은 소포리 어매들의 노래방이다. 새벽부터 밭으로 갯벌로 나가 뻗치게 일한 어매들은 저녁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남례 어매네 집으로 모인다. 사랑방이 비좁도록 둘러앉은 어매들은 노래를 부르며 고단한 하루의 시름을 풀어놓는다. 날달걀 하나씩 원샷 하고 북과 함지박 장단에 맞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어매들에게 노래는 삶의 유일한 낙이요, 어매들의 노래방은 너나할 것 없이 신산한 삶을 위로받는 해우소다.
▲ “징그럽도록 고생스런 인생, 노래가 약이여”
한남례 어매는 열아홉에 시집 와 눈 먼 시할머니 수발과 열두 식구 대가족 살림을 돌보고, 어린 시동생을 들쳐 업은 채 들로, 염전으로 일을 다니며 허리 펼 날 없는 시집살이를 해왔다. 그 매운 설움을 한남례 어매는 소리로 달랬다.
엄매 엄매 우리 엄매 뭣할라고 나를 낳아서 글공부나 시켜주제 일 공부를 시켰던가
“어릴 때 자다 들으면 우리 어매가 이 노래를 그렇게 불고 불고 하더이만. 이 노래만 불면 어매 생각이 나.“
어릴 적 어매에게 귀동냥으로 배운 노래들을 한남례 어매는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시어매 눈치 보지 않고 부를 수 있게 됐다. 1976년, 사랑방 문턱을 헐어 어매들을 위한 노래방으로 만든 한남례 어매는 육자배기부터 흥타령, 진도 아리랑, 둥덩에 타령 등등 사라져가는 토속민요를 마을 어매들에게 가르쳤다. 어매들의 노래방은 그렇게 남도의 토속민요를 잇는 소리의 산실이 됐다.
▲ “나는 살아왔던 시절로 돌아가라면 죽었다 깨어나도 안 가”
1970년대 간척사업이 시행되기 전까지, 물도, 나무도, 농사지을 땅도 귀했던 소포리는 진도에서도 살기가 힘들기로 이름난 동네였다. 스물하나에 소포리로 시집 온 이옥지(80) 어매는 시집오자마자 병석에 누운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건사하느라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모방살이(셋방살이)의 설움은 말할 것도 없고, 새벽같이 파밭으로 염전으로 뛰어다니는 걸로도 모자라 산에서 지네까지 잡아다 팔아서 겨우겨우 오늘을 살아내도, 내일 아침이면 또 먹을 게 없어 눈앞이 캄캄했다는 옥지 어매. 두 주먹 뽈깡 쥐고 악착같이 살아나온 그 시절은 청춘을 돌려준다고 해도 돌아가기 싫을 만큼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옥지 어매는 아들 삼형제 다 키우고 마흔이 넘어서야 노래방 출입을 시작할 여유가 생겼다.
“항상 가슴이 아팠어. 뭣을 먹으면 소화를 못 시키고 그러니까 항상 얹히고 그랬는데 소리 하면서는 안 얹혀. 그래가지고 그냥 조금 성가시면 동무들 하고 앉아서 소리 해불면 속이 후련해.“
▲ “어매들의 노래방은 남도의 보물”
서울대 국악과 교수인 힐러리 핀첨 성(48)은 매년 방학이면 어매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진도를 찾는다. 10년 전, 남편과 우연히 여행 차 왔던 진도에서 어매들의 토속민요를 접하게 된 힐러리는 어매들을 통해 남도 토속민요의 탄생 배경과 전승 과정을 연구하기도 했다. 한남례 어매에게서 배운 육자배기와 진도아리랑을 맛깔나게 소화해내는 힐러리 핀첨 성 교수는 어매들의 노래방이 남도 토속민요의 중요한 산실이라고 강조한다.
“옛날 닭타령이나 빈지래기 타령을 하실 수 있는 분이 별로 없어요. 언젠가 한남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토속민요의 전승이 끊어질 거 같아서 슬퍼요.“
/김호경기자 khk010@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