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제36보병사단이 예비군훈련장에서 훈련하고 있다.(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 연합뉴스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며, 제대 후 수년간 예비군훈련을 거부해 온 20대 남성의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됐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비폭력주의’ 등 개인의 신념에 따른 양심을 인정한 사례이다. 이를 통해 향후 양심적 병역거부의 허용 범위가 종교를 넘어 윤리·도덕·철학 등으로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수원지법 형사5단독 이재은 판사는 예비군법 및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28)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13년 2월 만기 전역하고 예비역에 편입됐으나, 지난 2016년 11월부터 2018년 4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친 예비군훈련, 병력 동원훈련에 불참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적시된 대로 훈련에 불참한 것은 사실이지만,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을 위해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랐다며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피고인이 이런 신념을 갖게 된 배경 등을 파악한 후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향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있었다. 그는 미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후, 여러 매체를 통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잘못은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이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
이런 이유로 A씨는 당초 입대를 거부할 결심을 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간곡한 설득으로 양심과 타협해 결국 입대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신병 훈련을 겪으며 군 복무가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입대를 후회하게 됐고, 결국엔 자원해서 군사훈련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회관관리병으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복무 만기 전역 후 그는 더이상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겠다며 예비군훈련에 모두 참석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재판에 넘겨졌다. 이 판사는 A씨의 예비군 훈련거부가 진실된 양심에 따른 것이고 절박하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은 자신의 신념을 형성하게 된 과정 등에 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수년간 계속되는 조사와 재판, 주변의 사회적 비난에 의해 겪는 고통, 안정된 직장을 얻기 어려워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 형벌의 위험 등 피고인이 예비군훈련을 거부함으로써 받는 불이익이 훈련에 참석하는 것으로 발생하는 불이익보다 현저히 많다”고 설명했다. 또 “피고인은 처벌을 감수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고, 오히려 유죄로 판단되면 예비군훈련을 면할 수 있는 중한 징역형을 선고받기를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변문우 인턴기자 bmw101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