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상장사들의 배당 확대 문제는 주식시장에서 오랫동안 이슈가 돼왔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인색했던 한국 상장사들의 배당 관행은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가져온 중요한 이유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배당을 늘리라는 주식시장의 압박이 기업의 투자 재원을 줄여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동의할 만한 주장은 아니다. 한국 증시에서 과도한 배당 때문에 성장성이 훼손됐던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외국 자본이 과도한 배당금 수취를 통해 먹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은 있었지만 이는 매우 특수한 사례로 봐야 한다.
얼마 전 한국 최대의 연기금으로부터 배당을 늘리라는 요구를 받았던 상장사가 이 요구를 거절했다. 명분은 대주주의 지분율이 53%에 달하기 때문에 배당을 늘리면 회사의 오너만 수혜를 보게 된다는 논리였다. 납득하기 어렵다. 배당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과 나누는 행위다. 지분율이 높은 대주주가 많은 배당을 받아가는 것이 비난받아야 할 일도 아니지만 이런 논리라면 대주주를 제외한 나머지 47%의 주주들은 배당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 비상장 기업도 아니고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에게 노출돼 있는 상장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기업의 자본이 효율적으로 운용되면 굳이 배당을 안 해도 된다. 자기자본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잣대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있다. ROE는 자기자본 대비 이익의 규모를 보여주는 지표다. ROE를 높게 유지할 자신이 있으면 배당을 통해 자기자본 규모를 줄이는 것보다 오히려 자본을 재투자해 이익의 규모를 늘리는 게 올바른 선택이다.
최근 논란이 됐던 기업은 자기자본 재투자의 명분도 약했다. 최근 5년 동안 이 기업의 ROE는 최고 4.2%에 불과했다. 낮은 ROE를 내는 기업이 배당을 적게 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경제적 효율성을 해치는 행위다. 경제적 자원이 수익성이 낮은 분야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정 배당을 실시하면 사외로 유출된 자본이 더 수익성 높은 분야에 투자될 수도 있고 배당은 자기자본의 규모를 줄여 해당 기업의 ROE를 높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신규 투자와 관련된 비전을 보여줬어야 했다. 낮은 ROE는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졌거나 부진한 업황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축적된 자본이 있는 기업은 신규 투자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 신규 투자의 성공 여부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지만 투자 재원의 축적을 위해 배당을 유보한다는 제스처를 보였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ROE가 낮고 신규 투자와 관련된 계획도 투자자들에게 제시하지 못하지만 사내에 축적된 유보금이 많은 기업은 배당을 늘리지 않으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최근 이슈가 됐던 이 기업의 주가는 지난 2010년 이후 10개년 중 7년에 걸쳐 해당 기업이 속한 업종지수 대비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주가가 기업활동을 평가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상장사라면 시장을 설득할 수 있는 소통을 할 의무도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