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 선고를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평균 수명 증가와 경제 발전 수준 등을 감안해 육체노동자의 정년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 1989년 55세에서 60세로 올린 지 30년 만의 상향조정이다. 이 경우 법적 분쟁뿐 아니라 정년·연금제도·보험료율·청년 취업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관측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박모씨 부부와 딸이 수영장 운영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피해자의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보고 손해배상액을 산정한 원심 판결을 깨고 “만 65세로 올려서 계산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선고에 참여한 12명의 대법관들이 사실상 모두 가동연한을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다수 의견을 낸 9명의 대법관들은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보아온 견해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며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만 60세를 넘어 만 65세까지도 가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특히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이 급속하게 향상·발전하고 법제도가 정비·개선됨에 따라 1989년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제반 사정들이 현저히 변했다”며 “국민 평균수명이 남자 67.0세·여자 75.3세에서 2015년 남자 79.0세·여자 85.2세로, 2017년 남자 79.7세·여자 85.7세로 각각 늘었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6,516달러에서 2018년에는 3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별개의견을 낸 3명의 대법관 가운데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만 65세가 아닌 만 63세로 연한을 올리자며 다소 보수적인 제안을 했다. 김재형 대법관은 만 65세라고 연령을 특정하기보다 ‘만 60세 이상’이라는 포괄 선언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전원합의체 선고에는 올 초까지 법원행정처장을 맡았던 안철상 대법관과 지난해 말 취임한 김상환 대법관은 참여하지 않고 최근까지 사건을 함께 심리했던 조재연 현 법원행정처장이 참여해 총 12명의 대법관이 의견을 냈다.
박씨는 2015년 수영장에서 익사 사고로 당시 4세였던 아이를 잃고 운영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사망한 아이가 살았을 시 일반 육체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연령을 60세로 볼지, 65세로 볼지가 쟁점이 됐다. 피해자의 노동 가동연령에 따라 손해배상 액수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1·2심은 일반 육체노동에 종사할 수 있는 연한을 기존 판례대로 60세로 보고 손해배상액을 계산했다. 박씨의 아들이 만 60세가 되는 2071년 3월까지 생계비를 제외하고 총 2억8,338만원을 벌 수 있다고 산정했다. 이에 따라 원심은 수영장 운영업체가 박씨에게 총 2억5,400여 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박씨는 “기존 판결이 선고된 1980년대와 비교할 때 평균수명, 사회·경제적 여건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반영해야 한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은 육체 가동연한에 대한 하급심 판단이 지속적으로 엇갈리자 지난해 11월 박씨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또 같은 달 공개변론을 열고 각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했다. 대법원은 본래 일반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경험칙상 55세로 규정했으나 1989년 12월26일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를 60세로 올린 바 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