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의 도심이자 부촌인 멘텡(Menteng). 이곳의 대표적인 대형 복합쇼핑몰 ‘그랜드 인도네시아’는 평일 저녁에도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일본계 세이부백화점, 로컬 브랜드인 호텔 인도네시아 켐핀스키 자카르타와 함께 들어선 이 쇼핑몰은 세련된 인테리어에도 불구하고 샤넬·에르메스 같은 최고급 명품보다는 유니클로·막스앤드스펜서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가 더 눈에 띄었다. 주렁주렁 쇼핑백을 든 사람보다는 퇴근 후 일상적으로 들른 느낌의 편안한 차림이 많았다. 자카르타에 거주하는 아드리안 레가(32·직장인)씨는 “날씨가 덥고 차가 많이 막히는 자카르타에서는 사람들이 여가시간을 주로 쇼핑몰에서 보낸다”며 “퇴근 후나 주말에는 아침부터 운동하고 밥 먹고, 또 친구를 만나 영화보고 노래방도 가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심의 복합쇼핑몰 ‘그랜드 인도네시아’ 내부 전경. /사진=이재유기자
◇퇴근 후·주말 할 것 없이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센터’=자카르타에서 쇼핑몰은 ‘라이프스타일 센터’다. 사시사철 날씨가 덥고 습한 탓에 로드숍·가로상권이 없다시피 하고 거기에 더해 하루 종일 교통 정체가 심해 이곳 사람들에게는 쇼핑몰이 집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주중에는 직장인, 주말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이 1년 365일, 보통 아침부터 오후10시까지 문을 여는 쇼핑몰에 몰리며 인산인해를 이룬다.
인도네시아 쇼핑몰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극장·푸드코트·테마파크·서점 같은 대규모 시설을 갖춘 것은 물론, 이발소·마사지숍·여행사·학원 등 다양한 근린생활시설까지 모두 들어서 있다. 노래방·가라오케 같은 위락시설과 인구 80%가 믿는 이슬람교 기도실에, 드물게는 기독교 예배실(교회)도 있다. 주일 교회에 가지 않고 놀러 나왔다는 죄책감까지도 쇼핑몰이 해결해주는 것이다. 폭염과 강추위·미세먼지 등으로 야외활동이 제한되는 날이 많지만 답답함 없이 하루를 보낼 실내시설이 많지 않은 한국과 비교하면 부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심의 복합쇼핑몰 ‘그랜드 인도네시아’ 전경. 건물 ‘중정’에는 고객이 쉬면서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장식돼 있다. /자카르타=이재유기자
이를 방증하듯 인구 1,000만이 넘는 자카르타시는 규모가 있는 복합쇼핑몰만 129개에 달한다. 아직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00달러 남짓한 나라임에도 전체 임대 가능 면적 140만여평 중 입점률이 88.8%이고 여기에 동네 소규모 유통센터까지 합치면 ‘쇼핑몰 천국’이라는 말도 지나치지 않다. 소득수준이 높은 도심·부촌에는 하이엔드급 호텔 체인, 외국계 고급백화점과 함께 명품 중심의 가게가 즐비한 쇼핑몰이 들어서고 외곽에는 동네 소비수준에 맞는 구성으로 크고 작은 쇼핑몰이 빠짐없이 들어서 있다는 얘기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심의 복합쇼핑몰 ‘퍼시픽 플레이스’ 내부 푸드코트 전경. 수변공간에 실제 요트를 고정시켜 식사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 놓았다. /자카르타=이재유기자
◇발리 경유지 넘어 ‘쇼핑 데스티네이션’으로…자카르타 대형쇼핑몰만 129곳=그간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의 세계적 휴양지 발리를 가기 위해 지나가는 경유지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경제력을 갖춘 내국인 수요에 해외 관광객까지 몰리는 ‘쇼핑 데스티네이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통 호텔, 외국인 레지던스도 함께 갖춰 관광객이나 지방 비즈니스맨도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것.
실제로 다음날 저녁 찾아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대표적인 고급 쇼핑몰 ‘퍼시픽 플레이스’ 인근은 불과 3㎞ 남짓 이동하는 데 30분이 넘게 걸릴 만큼 차와 사람으로 넘쳐났다. 최고급 호텔 체인 리츠칼튼을 지나 들어선 쇼핑몰 1층의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 람보르기니 매장에는 판매가격 2억원이 훌쩍 넘는 ‘세계 최초의 슈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우르스 모델이 실제로 전시됐고 5~6층 푸드코트 수변공간에는 요트를 띄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이외에도 한국에서 진출한 CGV 멀티플렉스, 피트니스센터, 야마하 음악학원, 이발소, 여행사, 대형문구점, 키자니아, 대형 장난감가게 등이 즐비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심의 복합쇼핑몰 ‘퍼시픽 플레이스’ 남쪽에는 프랑스계 고급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가 입점해 있다. 복합쇼핑몰과 백화점 연결 통로에 프랑스 파리의 상징 중 하나인 에펠탑 조형물이 매달려 있다. /자카르타=이재유기자
특히 쇼핑몰 남쪽 프랑스계 고급 백화점 ‘갤러리즈 라파예트’ 입구에는 전통의상 히잡을 쓴 여성들이 백화점 입구에서 기념촬영에 한창이었다. ‘버버리’ 브랜드 특유의 패턴이 선명한 히잡을 두른 여성, 그 옆에는 캐주얼 차림이지만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핸드백을 들고 구두를 신은 여자아이가 함께 섰다. 외벽에 ‘최고의 쇼핑명소(The Ultimate shopping destination)’라는 문구가 은은한 반사조명으로 빛났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심의 복합쇼핑몰 ‘퍼시픽 플레이스’ 남쪽에는 프랑스계 고급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가 입점해 있다. 백화점 정문 앞에서 잘 차려입은 현지 여성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이재유기자
인도네시아 쇼핑몰에는 아무런 영업제한이 없다. 대부분의 매장은 1년 365일 오전10시부터 오후10시까지 영업한다. 매년 라마단이 끝나는 축일에 하루를 쉬는 곳이 있지만 그것도 쇼핑몰이 판단할 일이다. 수도인 자카르타에 쇼핑몰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수년 전부터 신규 지하철역사 내부 매장 외에는 출점 허가가 어렵지만 그것도 극심한 교통 정체가 이유일 뿐이다.
이처럼 정부가 쇼핑몰에 관대한 것은 1년 내내 날씨가 무덥고 교통 정체가 심해 국민들이 여가 시간에 쉴 곳이 쇼핑몰 외에 없기 때문이다. 아직 소득수준이 낮은 만큼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서 주말을 즐길 만한 여유도 없고 도로·대중교통 인프라도 열악해 현실적으로 어렵다.
쇼핑몰에서 만난 아티(34)씨는 “명품이야 상위 1% 부자들이 대상이겠지만 이제 인도네시아도 중산층이 늘어 충분히 고급 쇼핑몰도 즐길 수 있다”며 “솔직히 가격은 인터넷몰이 더 싸지만 상품이든 음식이든 다양한 가격대로 즐길 수 있는 쇼핑몰은 이제 쇼핑 자체보다는 먹고 즐기는 곳”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심의 복합쇼핑몰 ‘퍼시픽 플레이스’ 남쪽에는 프랑스계 고급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가 입점해 있다. 백화점 벽면의 ‘The Ultimate Shopping destination(최고의 쇼핑명소)’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자카르타=이재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