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대전공장 근로자들, 위험요소 135건 개선 요구했었다

폭발사고가 발생한 한화 대전공장 사고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15일 경찰과 소방·전기·가스 전문 기관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이 공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폭발사고로 20∼30대 근로자 3명이 숨진 한화 대전공장 근로자들은 그동안 작업 과정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100차례 이상 개선을 촉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22일 오후 숨진 근로자들의 빈소가 마련된 대전의 한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을 만난 자리에서 한화 대전공장 근로자들이 작성한 ‘위험물 발굴 개선 요청서’를 공개했다.

위험물 발굴 개선 요청서는 근로자들이 작업 과정에서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을 적고 개선 방향을 정리해 공장에 보고한 문서로, 지난해 폭발사고로 5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 이후 작성되기 시작했다.

유족 측의 요구로 공개된 요청서는 최근 폭발사고가 발생한 이형공실 근로자들이 지난해 11월부터 1월까지 작성한 것으로, 총 135건이다.

근로자들은 요청서에서 ‘불안’, ‘위험’, ‘불편’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공장 내부가 어두워 위험하고, 방염복이 제 기능을 못 한다”며회사 측의 개선을 요구했다.

특히 추진체의 이형(로켓 추진체에서 연료를 분리하는 일) 작업 중 코어를 빼내기 위해 유압 실린더(이형기계)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폭발이 발생했다는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의 중간조사 발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요구 사항도 적지 않았다.

근로자 A씨는 지난해 12월 28일 “이형 장비의 하우징이 추진기관과 맞지 않아 이형 시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로 이형이 되고 마찰이 생기는 것 같다”고 적었다.

또 다른 근로자 B씨도 “작업을 하는 데 수평이 맞지 않아 이형 시 코어가 기울어진 채로 올라가 마찰이 생기며 이형 된다”고 밝혔다.

이형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열이나 스파크는 추진체 폭발로 직결될 수 있는 위험한 요소로 알려져 있다.


B씨는 요청서에서 “수평을 맞추기 위해 장비 내부 와이어를 조정했지만, 임시 조치일뿐 정확하게 하지 못해 현재 해당 부서에 의뢰해 대기 중”이라며 공장 측의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근로자 C씨도 “경화 종료 후 냉각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충분히 냉각되지 않으면 이형 과중 중 모터 들림 현상이 발생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근로자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방염복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 근로자는 “방염복에 추진제가 묻어 화재 위험이 있다”고 적었고, 또 다른 근로자는 “방염복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고 개선을 요구했다.

공장 바닥 균열이 심각하다거나 출입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 불필요한 박스가 쌓여 있어 불편하다는 등 다소 경미해 보이는 내용도 있었다.

유족들은 현장 근로자들의 요구 사항만 제대로 지켜졌다면 안타까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공장 측의 무성의가 불러온 인재라는 것이다.

한 유족은 이번 사고로 숨진 근로자의 이름이 적힌 요청서를 가리키며 “이건 우리 애가 자필로 작성한 것”이라며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개선사항만 줄기차게 요구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또 다른 유족도 “한화 대전공장은 방위산업체이고 국가기밀이라며 감추기만 급급하다”며 “근로자들에게 잠재 위험요소를 작성하라고 했으면 개선했어야지, 개선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게 아니냐”고 따졌다.

화약과 폭약 등을 취급하는 한화 대전공장에서는 지난해 5월 29일 로켓 추진 용기에 고체연료를 충전하던 중 폭발과 함께 불이나 5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데 이어 지난 14일에도 폭발사고가 발생해 20∼30대 청년 3명이 숨졌다.

/김호경기자 khk010@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