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3·1운동 100주년 ‘파리 브로맨스, 김규식과 여운형’

사진=KBS1 ‘역사저널 그날’ 예고 영상 캡처

24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3·1운동 100주년 기획 1편 ‘파리 브로맨스, 김규식과 여운형’ 편이 전파를 탄다.

▲ 1919년, 슬픔에 잠긴 대한제국

1919년 1월 21일,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강제병합 이후 일본의 무자비한 식민통치가 지속된 가운데, 가슴 속에 묻힌 국민들의 울분이 터져 나온다. 망국, 그리고 황제의 죽음. 비극적 현실을 맞은 대한제국의 운명은?

▲ 역사의 흐름을 뒤바꾼 두 청년, 김규식과 여운형!

왕의 승하에도 비탄에 빠지지 않고 독립 의지를 불태운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여운형! 그는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가 프랑스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김규식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좌절의 문턱 앞에 선 한국, 그리고 독립을 위한 한 줄기 희망이었던 파리강화회의! 여운형은 김규식을 파견하여 어떤 일을 도모하려 한 것일까.


후일, 그 작은 날갯짓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무엇이었을까.

▲ 김규식, 한국의 운명을 짊어진 채 파리로 향하다

1919년 2월, 신한청년당 김규식은 파리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조국의 운명을 짊어진 힘겨운 여로였다. 게다가 일제의 감시망을 뚫고 파리로 향하는 건 순탄치 않았다. 무엇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서 오로지 독립에 대한 열망만이 김규식을 버티게 하였다. 여운형 역시 분주했다. 신한청년당 회원들과 힘을 모아 김규식의 활동을 아낌없이 지원한다.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독립 청원서를 쓰고, 국내와 해외에 사람을 파견하여 항일 의지를 결집하는데. 독립을 위해 결의한 김규식과 여운형. 두 사람의 눈물겨운 파리 브로맨스, 그 결말은?

▲ 파리강화회의는 3·1운동의 기폭제?

김규식은 ‘파리강화회의’ 참석에 성공했을까? 그가 파리로 떠난 뒤, 1919년 3월 1일! 유례없는 전 민족적 만세 운동이 시작된다. 3·1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게 된 데는 ‘파리강화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그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김호경기자 khk010@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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