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섬 제주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 제주 올레길을 찾은 한 시민이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제주올레는 올레길과 주변 환경을 청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를 지원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버려진 캔이나 플라스틱 등을 수거하는 ‘클린올레’ 캠페인을 벌여왔다./사진제공=제주올레
천혜의 섬 제주도가 환경과 삶을 바꾸는 거대한 실험장으로 거듭난다. 서울경제신문은 오는 3월부터 환경부, 한국관광공사, 제주특별자치도,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함께 손잡고 제주를 무대로 친환경 공익 캠페인 ‘ECO&LIFE, 세상을 바꾸는 우리(세바우)’를 대대적으로 펼친다. ‘세바우’의 첫 출발지를 제주로 잡은 것은 친환경을 표방하지만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는 현실적인 인식 때문이다. 연간 관광객이 1,5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지만 곳곳은 쓰레기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유명 해수욕장을 비롯해 성산 일출봉, 천지연 폭포, 쇠소깍 같은 여행지에 버려진 쓰레기는 관광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만 아니라 비닐·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제주의 지속 가능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하지만 제주는 섬 안에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대규모 폐기물 처리 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도내에 관련 설비를 갖춘 업체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드문 실정이다. 무턱대고 폐기물을 쌓아놓을 수 없어 폐기물을 전량 내륙으로 옮기고 있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이 난색을 표하면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제주는 ‘천혜의 자연환경’이라는 명성 못지않게 국내 쓰레기 배출량 1위 지역(거주민 기준)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섬이라는 특수성이 안겨준 천혜의 자연은 제주의 명성을 드높였지만 역설적이게도 환경문제를 자체 해결하지 못하면서 제주의 자연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안고 시대의 화두인 ‘지속 가능한 삶’을 제주에서 펼쳐보려고 한다. 본지가 연중 캠페인으로 펼치는 ‘세바우’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플라스틱을 쓰지 말자거나 일회용품을 단번에 없애자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자원의 선순환을 꾀하자는 데 있다. 즉 생산과 소비, 관리 및 폐기, 그리고 재활용에 이르는 자원순환 시스템이 하나의 사이클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정된 자원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순환 시스템을 구축해 제주도 안에서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오는 2027년까지 생산·소비 단계에서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제품 재사용 촉진을 통해 폐기물의 근원적 발생을 절감한다는 정부의 자원순환 기본계획과도 맥을 같이한다. 김태희 자원순환사회연대 정책국장은 “단순히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등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만으로 친환경이라고 볼 수 없다”며 “우리 사회 공동체가 재활용, 즉 자원순환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짚었다.
올해 ‘세바우 캠페인’은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인 올레길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관광객이 올레길 인근에 자리한 캠페인 참여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했을 때 받게 되는 용기는 매장 내에서는 머그잔이며 매장 밖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에는 100%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컵을 받는다. 세계 최초로 친환경 식품포장용지 기술을 개발한 리페이퍼가 생산하는 이 컵은 값싼 중국산 원지를 사용하는 ‘이름만 종이’인 기존의 폴리에틸렌(PE) 종이컵과 달리 100% 재활용할 수 있다. 보통의 종이컵은 내수성을 부여하기 위해 PE 코팅 처리를 하는데 이 경우 코팅을 분리하기 어려워 자연에서 온 원료인 종이를 그대로 버리게 된다. 땅속에 묻어도 완전히 분해되는 데 30년 이상 소요되며 태워도 유해가스가 배출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폴리유산(PLA·Poly Lactic Acid) 코팅을 한 생분해성 컵이 최근 등장했지만 내열성이 부족해 전자레인지나 오븐 사용이 어려운데다 컵 전체를 하나의 소재로 통일하기 어려워 종이 재활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특수 코팅제를 입힌 리페이퍼의 컵은 PE·PLA 컵의 단점을 모두 극복해 원지를 100% 재활용할 수 있으며 생활 폐기물로 버려져도 빠르면 3개월 이내 분해(퇴비화)되기 때문에 환경부의 ‘포장의 환경성 높인 한국산업표준 8종’에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내열성까지 우수하다는 점도 특징이다.
캠페인 참여 카페에는 수거함을 매장 안에 비치해 컵 반납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각 카페의 컵은 제주도 내 재활용 도움센터에서 모은 후 페이퍼코리아의 생산 공장으로 옮겨진다. 이곳에서 컵은 별도 처리를 거쳐 재생 원지로 재탄생하고 원지는 훗날 고급 화장지나 복사지 등으로 변신해 다시 소비자를 만나게 된다. 특히 이번 캠페인을 위해 별도 제작하는 컵은 국내 제지업계 1위인 한솔제지의 고급 원지를 사용하면서 생산부터 폐기·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자원의 선순환 체인이 모범적으로 구축됐다는 평가다. 아울러 관광객들이 이동 중에 사용한 일회용 종이컵을 음료를 구매한 카페로 다시 돌아가 반납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캠페인 참여 카페 어느 곳에서든 리페이퍼컵을 수거하고 올레길 곳곳에도 종이컵 수거함을 비치할 예정이다. 제주도에서 시작한 세바우 캠페인이 내륙으로 확산, 대한민국의 변화를 일굴 수 있도록 환경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적극적으로 힘을 보탠다. 지난해부터 주요 국립공원에서 환경 캠페인을 펼쳐온 한국관광공사는 전국 주요 여행 명소를 중심으로 자연에 유해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대신 텀블러나 다회용컵, 불가피할 경우 친환경 종이컵을 사용하도록 독려한다.
이찬희 서울대 그린바이오 과학기술연구원 교수는 “지난해 발생한 쓰레기 대란에서 보듯 폐기물을 수거하고 분류할 때 시민과 지자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극심한 진통을 겪었던 쓰레기 봉투 종량제가 이제는 당연하게 우리 삶에 뿌리내렸듯 (까다로운 재활용 분류 과정 등이)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우리 국민과 지자체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회용품 사용 규제가 갑자기 풀린 2008년처럼 정부의 정책이 한번 퇴보하게 되면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환경에 유해한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노력과 함께 자원순환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제한된 자원을 제대로, 똑똑하게 쓰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