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간) 오후 베트남 하노이 도착 첫 일정으로 북한대사관을 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대사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55년 만에 찾아온 ‘혈맹’의 지도자를 베트남 정부와 국민들은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66시간의 열차 대장정 끝에 베트남 땅을 밟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미소와 손 인사로 이들에게 화답했다. 2차 핵 담판을 불과 하루 앞두고 북미 간 긴장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지만 김 위원장은 우방국의 환대 덕에 실시간 생중계에 나선 전 세계 언론 앞에서도 시종일관 여유를 과시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26일 오전8시13분(현지시각)께 열차를 타고 중국과 베트남 국경을 넘어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했다. 김일성 주석 이후 55년 만의 방문인 탓에 북한과 베트남 모두 의전에서 실수가 발생했다. 김 위원장의 열차는 플랫폼에 정확하게 맞춰 정차하지 못했고, 김 위원장이 하차하기 전에 베트남 의장대가 음악을 연주하는 등 엇박자가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은 지난해 싱가포르 방문 때와 비교해 한층 여유롭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김 위원장은 어수선한 상황이 정리된 끝에 8시22분께 모습을 드러냈고 밤을 새워 기다린 전 세계 언론은 이를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김 위원장은 베트남 권력 서열 13위인 보반트엉 공산당 선전 담당 정치국원의 영접을 받으며 플랫폼 밖으로 나갔다. 김 위원장은 전용차량에 탑승한 후 창문을 내려 환영하는 베트남 시민들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기도 했다.
동당역을 출발한 후에는 곧장 하노이 숙소로 향했다. 이동 도중 베트남 기업 등을 시찰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으나 숙소인 멜리아호텔로 직행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로 향하는 길은 완전 통제됐다. 김 위원장의 차량 행렬 경호에는 경찰차와 사이드카는 물론 장갑차까지 동원됐다. 베트남 정부는 김 위원장의 이동 경로 주변의 건물도 통제했다. 일부 시민들이 높은 층에서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공안들이 어김없이 큰소리로 제지했다. 베트남의 오토바이 부대들도 교통 통제 앞에서는 모두 멈춰 섰다. 하지만 시민들은 대대적인 교통 통제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김 위원장의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손을 흔들며 환영했다. 하노이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예상하지 못한 ‘볼거리’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김 위원장의 숙소인 멜리아호텔 주변에는 전날보다 더 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도착을 앞두고 북한 경호원들이 예민하게 반응했고 일부 취재진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베트남 정부도 이날 오전6시부터 통제 구역을 더 넓혀 취재진의 접근을 통제했다. 멜리아호텔 앞 도로는 호텔 양 진입로 기준으로 50~100m 밖까지 접근이 차단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노란색 원 안)이 26일 북한대사관 안으로 걸어올라가고 있다. /하노이=정영현기자
북미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차량에 탑승해 현지인의 환영에 화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스위트룸이 위치한 22층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하노이 첫 일정으로 북한대사관을 방문했다. 오전11시에 호텔에 도착해 6시간 만인 오후5시께 호텔을 나섰다. 여독을 풀고 북미협상 경과를 보고받은 것으로 추론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때는 대사관을 찾지 않았다. 이번에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사관 직원들은 2분여간 큰 소리로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레닌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북한대사관은 이달 중순께부터 내외부 보수 공사를 진행하며 김 위원장 방문을 대비해왔다.
한편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다시 중국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평양에서 출발한 김 위원장의 20량짜리 전용열차는 베트남 동당역에 도착하기 전 1시간 반 정도 핑샹역에 정차했고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은 다른 열차로 갈아탄 것으로 전해졌다. 동당역에 도착한 김 위원장의 열차는 13량이었다. 이를 두고 전용열차가 정비를 위해 중국으로 향했을 수도 있다는 관측과 함께 김 위원장이 귀국길에는 전용기를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또 북측 인사 중 일부는 27일 베트남 북부 공업도시 하이퐁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퐁에는 베트남의 첫 완성차 제조업체인 ‘빈패스트’ 등 유수의 기업이 위치해 있다.
/하노이=정영현기자 베이징=최수문특파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