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상·전투게임' 즐겼다면 양심적 병역거부 안 된다?

울산지검, 병역거부 사건 11건 ‘온라임게임 이용 조회’ 신청
대법원 언급 없는 게임 조회에 "처벌 논리에 매몰된 결정" 비판 일어

/연합뉴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특정 온라인 게임 이용기록’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11월 이른바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진정하게 성립된 양심을 따른 것이면 정당한 병역거부”라며 무죄 취지로 판단한 이후,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면 병역을 거부할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은 세워졌지만, ‘정당한 사유’ 판단 준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입영·집총 거부자들을 재판에 넘겨온 검찰이 “병역거부자들의 특정 온라인 게임 이용기록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특정 게임을 즐긴다는 것을 병역거부자 양심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억지스럽다는 반발이 있는가 하면, 폭력적인 성향이나 신념의 깊이를 평가하는데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울산지검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11건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담당 재판부에 최근 ‘온라인 게임 가입과 이용 사실’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을 했다. 재판부는 11건의 신청을 모두 수용했으며, 해당 게임 업체에 병역거부자들의 게임 가입 여부, 가입 시기, 이용 기관과 시간 등을 요청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지검이 조회 대상으로 지목한 게임은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 스페셜포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 오버워치, 디아블로, 리그오브레전드, 스타크래프트 등 8개다. 게임 유형에 따라 분류하면 이용자가 사물을 보는 시점에서 총이나 칼을 사용하는 1인칭 슈팅게임(FPS), 실시간 전략 게임(RTS) 등이다. 검찰의 이런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제주지검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병역거부자의 특정 게임 접속 기록을 확인한 바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병역거부자의 양심 판단 기준’과 관련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이 개인의 전반적인 삶의 모습을 살펴 정당한 사유를 가려야 한다고 판단했는데, 돌연 검찰이 대법원이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게임을 시빗거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이 설정한 가상의 상황을 실제 군사훈련 거부와 연관 지으려는 시도 자체가 난센스며, 결국 검찰이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려는 것에 매몰돼 스스로 논리 비약의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검찰이 지목한 8개 게임 중 스타크래프트나 리그오브레전드 등은 특별히 잔인한 설정이 없는 전략 게임이어서 폭력성향과는 더욱 상관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울산지검은“개인 양심 굽혀 입대한 사람들과의 형평성 따져야한다”며 논란에 대응했다. 울산지검은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에 대해 “피고인의 가정환경·성장 과정·학교생활·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아울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시해, 사생활을 판단 자료로 삼도록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심의 정도에 대해서는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하고, 신념과 관련한 문제에서 상황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해석했다. 사생활 침해라는 문제 제기에는 “공적 생활영역과 사적 생활영역을 전반적으로 살펴 정당한 사유를 판단하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므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등 문제가 없다면 게임 이용기록 조회가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평소 살상·전쟁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가 집총거부 등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게 검찰 판단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면 온라인 게임과 같은 가상 공간에서도 그 신념에 따라 행동해야만 양심의 깊이와 진실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특정 종교의 경우 ‘폭력적인 성향을 자극하는 게임을 주의하라’는 것을 교리로 삼고 있어, 검찰로서는 게임 이용 여부를 살펴볼 근거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정선은 인턴기자 jse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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