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현안 눈감고 '진로교사' 자처한 미래교육위

신다은 사회부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 당시 1호 공약으로 앞세운 ‘미래교육위원회’가 27일 출범했다. 미래 교육의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던 위원회의 첫 과제는 편당 600만원을 들여 ‘진로소개 동영상’을 찍는 일이라고 한다. 직업인 36명의 성공담을 영상 30편에 담고 대규모 토크콘서트도 연다. 섭외 명단을 보니 3분의2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경험담이 쏟아져나오는 인물들이다. 미래교육위는 영상과 장소 섭외에만 7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직업인들은 매달 한 번씩 자문회의도 연다. 교육부 과장부터 창업에 소질이 있는 학생, 벤처 창업가, 캐릭터디자이너, 화이트해커 등이 모여서 ‘뭘 논의할지’부터 정한다. 당장 이날부터 만난다는데 모이는 횟수만 정해지고 토론 안건과 활동계획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상향식 협의라 그렇다. 오늘 만나서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미래교육위가 교육부 산하 정책자문기구인지, 시민 자유토론대회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지난 25일 사전 기자 브리핑에서도 예상 가능한 질문이 쏟아졌다. 대입 혁신 등 미래 교육 현안이 산적한데 왜 진로상담을 하느냐, 위원 구성을 보니 심도 있는 정책 토론을 하기 어려워 보인다, 적어도 뭘 논의할지는 미리 정했어야 하지 않느냐 등등이었다.

교육부의 답변은 이랬다. “정부가 여러 미래 교육 정책을 추진하는데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전통적으로만 공부하려는 경향이 있어서요. 다른 방향으로도 진로를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수많은 질문을 동시에 떠오르게 하는 말이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몰라서 안 했나. 교육부가 만들어놓은 입시제도의 판이 오지선다형 공부고 그걸 벗어나면 제도권에서 밀려나기 때문에 꾸역꾸역 공부하는 게 아닌가. 정말 역량 중심 교육을 시키고 싶으면 학생들을 설득하기 전에 평가제도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고교학점제든, 자유학년제든 제도를 믿고 따라간 학생들에게 끝내 배신감을 안기지 않을 자신이 있나. 미래교육위는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기구가 아닌가.

생각이 뒤엉키던 참에 유 사회부총리가 기자들과 만나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대입과 관련해서는 비공식적으로라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선명해지고 머릿속이 맑아졌다. 누군가 역량 중심 교육을 하겠다 하면 뜯어말리리라. 책임질 수 없는 정부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제대로 된 제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그저 ‘입시 준비’만 열심히 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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