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왼쪽부터) 고려대 교수,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신율 명지대 교수,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한반도 비핵화의 분수령이 될 ‘2·28하노이선언(가칭)’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운명의 순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2차 북미정상회담의 성패가 북한의 ‘영변 핵시설+α’ 조치와 이에 따른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미국의 대북제재 일부 완화 여부에 따라 갈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가운데 북미 두 정상은 27일 탐색전 성격의 연쇄적인 만남을 가졌다.
첫날 회담만 가지고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만약 북미 정상이 ‘시료 채취’ 등 구체적인 검증 방식은 빠진 채 영변 핵시설 동결·폐기라는 원칙적 합의에 그칠 경우 보여주기 행사라는 비판은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한이 영변 외 핵시설의 구체적인 신고·검증과 비핵화 로드맵을 약속한다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큰 기틀이 마련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번 ‘하노이선언’을 바라보는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의견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문구를 포함하지 않고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에 그칠 경우 좋은 평가를 할 수 없다는 쪽으로 모아졌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CVID 문구를 하노이선언에 포함하는 것은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북한은 결국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9·19공동성명 때와 달리 현재 영변 핵시설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은 2005년 당시와 달리 현재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영변 외 지역에서도 가동하고 있다”며 “원심분리기는 이동 가능해 일정한 공간만 있으면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실무그룹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를 위한 추가 논의를 계속한다고 해도 북미 간의 누적된 불신을 고려할 때 협상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높다. 실제 북한은 9·19공동성명의 원칙적 해결 방안을 담은 2·13합의를 통해 영변 핵시설과 관련 핵 신고서까지 제출했지만 검증 방식을 두고 미국과 극한 대립을 이어간 적이 있다. 서경 펠로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하노이선언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 그치면 북한은 모호한 하나의 비핵화 대상을 제시함으로써 구체적인 종전선언을 얻어내기 때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얻는 게 7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얻는 게 30%”라며 “북의 전략전술이 트럼프의 조급증을 눌렀다고 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영변 핵시설은 5㎿ 규모의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우라늄을 농축하는 핵연료 가공공장 등 북한 핵 개발의 산실인 만큼 이를 폐기할 수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의 큰 진전이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 실장은 “핵무기를 만드는 전체 공정에서 ‘핵물질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달한다”면서 “북한의 핵물질을 만드는 가장 핵심적 원천이 영변이라는 점에서 영변 폐기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언론과 조야에서는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보여주기식 만남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비관적 관점이 회담 직전 다시 불거졌다. 미 인터넷 매체 복스는 26일(현지시간) 북미 협상 상황을 잘 아는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쇄(close down)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실무그룹에서 추가 협상을 통해 세부 내용을 정한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1박2일 회담을 통해 하노이선언이 급변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영변 핵시설의 핵연료 생산 종료를 위한 구체적인 세부 사항이나 시간표는 마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이 내줄 상응 조치는 금강산 관광 재개로 굳혀지는 분위기다. 복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서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고 미국은 남북 경협을 위한 일부 유엔 제재 완화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와 함께 한국전쟁 종료를 상징하는 평화선언 체결과 함께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 미군 유해 추가 송환도 잠정 합의 대상에 포함됐다고 전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는 미국 단독 대북제재 규정에도 관광 자체를 금지하는 내용이 없어 가능성이 높다. 대량현금(벌크캐시) 이전 금지 조항을 포함한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위반 가능성은 있지만 해당 자금이 핵미사일 활동 등에 쓰이지 않는 점을 분명히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개성공단 재개는 금융거래 금지, 전기·기계류 공급 금지 등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 가능성이 높아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