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美서 끓어오르는 '부자 증세' 열풍

손철 뉴욕특파원


한반도와 주변국들이 북한의 비핵화를 손꼽아 기대했던 지난 이틀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10년 넘게 자신의 개인 변호사를 하며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최측근이던 마이클 코언이 특검 수사에 무릎을 꿇고 보스였던 트럼프의 치부를 낱낱이 공개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6년 당시 정적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타격을 가할 해킹 e메일이 공개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고 주장하고 트럼프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밝힌 여성 2명에게 입막음용 돈을 준 것을 사실상 배후에서 조정했다고 메가톤급 폭로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하노이에서 자신의 오랜 충복이던 코언을 ‘거짓말쟁이’로 둔갑시키고 “민주당이 그를 이용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의 양심선언을 물타기 하기 위해 2차 북미회담을 활용해 미국인의 눈과 귀를 잡아두려 한다는 의심을 공공연하게 제기해온 실정이다.

미국 언론들이 하노이 회담 와중에도 코언의 폭로를 더 큰 뉴스로 다루고 트럼프 대통령과 야당인 민주당 지도부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도 정쟁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미디어는 물론 여야의 운명이 달린 내년 대선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민주당은 코언의 폭로에 이어 트럼프 선거캠프와 러시아 간 유착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 발표를 부각해 백악관에 일대 타격을 줄 심산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든 이를 찻잔 속 태풍으로 틀어막으며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 드라마틱한 북미관계 개선을 유도해왔다. 그러나 특검 수사 결과나 북한 비핵화 여부가 내년 미국 대선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것 같지는 않다. 특검이 트럼프 대통령 측과 러시아 간 유착 정황들을 내놓더라도 실제 대통령을 기소하기는 어렵고 상원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 탄핵 역시 녹록하지 않아서다.


민주당도 트럼프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방도는 정면승부로 대선에서 이기는 길뿐이라 여기고 선거 화두를 선점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근 떠오른 것이 ‘부자 증세’다. 트럼프 정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감세 정책에 대립각이 선명한데다 억만장자인 트럼프 대통령을 단숨에 개혁 대상인 기득권으로 몰아세울 비장의 카드로 본 것이다. 미국의 부자 상위 400명이 하위 소득인구 1억5,000만명보다 50%나 더 많은 재산을 갖고 있다는 최근 조사 결과가 시사하듯 부자 증세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여론 지지도가 60%를 넘을 정도로 높은 편이다. 대중의 심리를 읽는 데 능한 트럼프 대통령도 부자 증세가 자신에게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일찌감치 사회주의적 발상으로 주홍글씨를 씌워 불 끄기를 시도했지만 정치는 생물이어서 대응할수록 논란은 커지는 양상이다.

부자 증세 논란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에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1,000만달러(약 110억원)를 넘는 고소득자에게 최고세율을 60~70%로 인상하자는 주장을 펴면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하자 민주당의 반(反) 트럼프 선봉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잇따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부유세 신설과 상속세 인상까지 공약으로 제시해 판을 키웠다. 다만 민주당에도 마이클 블룸버그 같은 억만장자 잠룡이 있고 감세를 앞세운 미 경제가 순항을 거듭하고 있어 내년 대선에서 부자 증세가 실제 위력을 발휘해 트럼프를 꺾을지 속단하기는 이른 면이 있다.

이래저래 백중세인 공화·민주당의 지지율 추이 속에 부자 증세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여파와 파장은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고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내년 총선은 미국 대선 후보들이 확정되는 과정의 한복판에 있어 직간접적 영향이 적지 않을 듯하다. 결국 민심을 움직이고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경제’라는 점을 청와대와 국회가 새삼 새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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