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베트남 공식 친선방문 일정을 마치고 평양으로 출발한 소식을 1면과 2면에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이 평양으로 가는 전용열차에 오르며 베트남 환송 인파에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미정상회담 결렬이라는 충격을 안고 지난 2일 귀국길에 오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으로 향하는 최단 열차 노선을 택했다. 중국 내 일정을 택하기보다는 최대한 빠르게 복귀해 회담 무산의 뒷수습과 대응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매체들이 김 위원장의 베트남 일정을 ‘성공적’이었다고 애써 포장하기는 했지만 내부 여론 차단에 한계가 있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협상 불발 책임론을 묻는 동시에 베트남과의 관계 강화는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으로 보인다.
3일 중국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전일 베트남 동당역을 출발해 빠른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중국 내 경제시찰이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남보다는 평양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속도라면 4일 저녁 또는 5일 새벽 단둥을 통과해 압록강을 건널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평양 복귀를 서두르는 것은 무엇보다 핵 담판 불발 대응책 마련의 필요성 때문이다. 노동신문 등 주요 매체들이 김 위원장의 베트남 일정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는 식으로 전했지만 ‘빈손’에 대한 소문이 내부적으로 퍼지는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전직 노동당 간부를 인용해 “(북한 지도부의) 리더십이 상처를 입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기강 해이를 막기 위한 일련의 조치가 단행될 수 있다는 의미다.
대미·대남 협상 전열도 다시 정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안에 반드시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하는 김 위원장으로서는 어려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미국과의 핵 협상 재개가 필요하다. 한국과 중국에 중재 역할을 요청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대화도 재개해야 한다. 특히 이번 회담 과정에서 ‘슈퍼 매파’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건재가 확인됐다. 새로운 전략 수립을 위해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등 이번 회담을 주도했던 인물 대신 뒤로 물러나 있었던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이 다시 나설 가능성이 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북한은) 회담 중 ‘핵 은폐 의혹’을 제기한 트럼프를 뒤에서 추동질 한 것이 볼턴이며 결국 회담을 결렬시킨 장본인이 볼턴이라고 대단히 화가 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권위 제고 차원에서 베트남 공식 방문에는 큰 의미를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주석의 과거 베트남 방문과 이번 일정을 연계해 김 주석 후광효과를 극대화해 주민 지지도를 높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등의 ‘도이머이’ 현장 시찰 경험을 북한에 적용할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경제시찰을 맡았던 간부들은 핵 담판 결렬 이후에도 베트남에서 경제 관련 인사들을 만나는 등 별도 일정을 소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달러는 “도이머이 시작 당시 베트남과 현재의 북한은 도시와 농촌의 인구구성 등에서 차이가 있다”면서도 “개혁 의지가 있다면 ‘베트남 모델’을 추진하는 게 포기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