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의약품 조제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국 약국의 조제실에 투명창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하면서 약사계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일단 권익위의 취지에는 일단 공감하면서도 약사계를 의식해 당장 시행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4일 약사업계에 따르면 권익위는 지난 26일 일선 약국의 의약품 조제를 국민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약국 조제실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을 복지부에 권고했다. 사실상 전국 2만3,000여곳에 달하는 약국 조제실의 칸막이를 투명창으로 변경해 약사가 의약품을 조제하는 모습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법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정대 권익위 경제제도개선과장은 “현행 약사법에는 조제실 설치만 규제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시설기준이 없어 대부분의 약국이 밀실 구조의 폐쇄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며 “약국 조제실에 투명창이 설치되면 무면허 조제와 조제실 위생불량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익위의 이 같은 조치에 약사계는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의약품 조제와 유통에 대한 관리감독은 정부의 역할인데 이를 약국과 약사에게 전가하는 과잉규제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전국 약국의 조제실에 투명창을 설치하려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고 투명창 설치를 통한 불법 조제행위 근절 효과 역시 담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찬휘 대한약사회장은 “무자격자의 불법 조제는 현행 약사법을 통해서도 충분히 단속과 처벌이 가능한데 이를 전국 약국의 인테리어 변경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과잉규제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무자격 보건의료행위의 근절에 나설 의지가 있다면 국민들의 요구가 무엇보다 높은 일선 병원의 진료실과 수술실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권익위의 제도개선을 통보받은 복지부는 일단 현장의 의견을 먼저 청취한 뒤 제도 시행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간 약국 조제실 투명창 설치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던 복지부였기에 권익위의 갑작스런 통보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집단휴업 등 단체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약사계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고민이다.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 관계자는 “불법 의약품 조제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권익위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또 다른 규제를 만들어야 할지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현장의 의견을 수렴한 뒤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