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의 인생역정이 제각각인 만큼 죽은 사람의 스토리 또한 구구절절 사연이 많다. 자살한 사람의 사연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하지만 죽은 사람들은 말이 없다. 특히 자살한 40~50대 중장년 남성들은 유서조차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서를 남긴다 해도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간단한 당부의 말 정도 남기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이들의 자살 이유 등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는 유가족들의 증언과 공인노무사인 ‘사람과 산재’ 한창현 대표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자살 동기를 추적한다.
건설사 S씨, 업무 스트레스 극심
휴직요청도 거절 당해 혼란 빠져
영업 압박 시달린 대기업 H씨는
실적저조 해고통보에 극단 선택
#사례 1
S씨는 종합건설회사에서 20년을 근무한 공사과장이었다. 그는 새 공사현장 발령이 싫었다. 회사에도 싫다는 뜻을 전했다. 험지라고 소문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발령은 내려졌다. 새 현장은 지하정수처리 시설공사현장으로 지역 관급공사였다. 공사는 자신들이 맡았지만 실제 공사는 재하청업체에서 했다. 열악한 재하청업체에서 하다 보니 하자가 이어졌다. 그러자 현장 감리단은 오류사항 지적과 공문폭탄을 쏟아냈다. 한 달 새 몇 백 건의 공문폭탄이 이어졌다. 일반현장의 10배도 넘는 공문이었다. 그러면 S씨는 지적사항을 개선한 뒤 ‘개선 전과 개선 후’ 사진을 찍어 회신해야 했다. 감리단의 공문폭탄을 못 이겨 현장관리소장과 품질관리과장이 회사를 그만뒀다. 현장에는 S씨만이 남아 이 모든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S씨 역시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로 새 현장으로 발령된 지 한 달 만에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거절했다. 그는 다시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는 극도의 혼란과 정신적 이상상태를 보이다 공사현장 옆 간이화장실에서 목매 자살했다.
#사례 2
C씨는 15년 차 사립학교 교직원으로 회계팀장이었다. 최연소 회계팀장(직무대리)을 맡을 만큼 위아래로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그런데 그 학교에 사학재단비리 문제가 터졌다. 재단이 바뀌면서 횡령문제로 고소·고발이 이어졌다. 업무가 쏟아졌다. 새 재단은 업무시스템을 변경한다면서 C씨에게 과도한 요구와 질책을 쏟아내고는 했다. 하지만 C씨는 직무대리라는 직책의 한계에, 최연소라는 연령문제로 업무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 와중에 교육부 회계감사와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스트레스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따라 상사 중 누군가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업무 스트레스와 교육부 감사, 검찰 조사까지 받으면서 C씨는 이상행동과 불안증세를 보이다 학교 비리와 관련된 두 번째 검찰 조사를 앞두고 목매 자살했다.
수십년 앞만보고 뛰었지만 자괴감
울분·좌절감 폭발하며 세상 등져
#사례 3
H씨는 국내 대기업의 영업본부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뒤 한 기계회사의 영업부장으로 스카우트됐다. 베트남 등 해외시장 개척이 그의 임무였다. 입사 후 베트남 납품은 성사됐다. 하지만 사드 사태로 중국 시장이 막히며 창사 이래 최초로 매출 감소, 미수금 증가 등 위기가 발생했다. 수개월 뒤에는 제품의 불량률 증가로 베트남 시장마저 막혔다. H씨는 숨이 막혔다. 해외거래 단절과 미수금 회수 저조에 책임감을 느꼈다. 매주 2~3회 진행되는 사장 주재 영업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죽을 맛이었다. 새로운 시장개척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필리핀으로 향하던 중 그가 받은 소식은 해고통보였다. 통보를 받은 뒤 그는 해외현지에서 자살했다.
#사례 4
2010년 12월 회사 송년회가 있던 날이었다. B씨는 송년회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귀가했다. 송년회 전에 품질평가회의가 있었다. B씨는 회의에서 낮은 고과를 받았다. 낮은 고과란 곧 무보직·대기발령을 의미했다. 22년간 직장을 다니며 쌓였던 분노·원망·울분이 폭발했다. B씨는 그날 집에서 자살했다
B씨가 하는 일은 통신망 유지보수 업무였다. 처음에는 공기업에 입사했지만 유선통신 부문이 분사되고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 되면서 민간기업 소속이 됐다. 민간기업 분위기는 공기업과는 전혀 달랐다. 사내정치가 난무하고 경쟁도 치열했다. 평직원 때는 실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아 빨리 승진하는 편이었지만 임원승진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보직도 지방으로 발령 났다. 후배가 먼저 승진하기도 했다. 뒤늦게 임원(비등기)으로 승진하면서 서울 강북과 경기·강원 지역 네트워크 유지보수를 총괄했다. 임원에게는 전국의 통신 네트워크 이상상황이 수시로 문자로 통보된다. 한밤중이나 새벽이나 구분이 없었다. 이 중 담당 구역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한밤중에라도 뛰어 나가야 했다. 하루에도 수십차례 문자가 왔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B씨는 ‘악마의 소리’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담당 지역에서 큰 사고가 나 사장이 거래처에 사과하기도 했다.
B씨의 아내는 “남편은 앞만 보고 뛰어가는 경주마처럼 직장과 일이 인생의 전부였다”며 “일 때문에 집안 제사조차 빠지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모든 것을 바쳤던 회사에서 승진에 미끄러지고, 무보직으로 내쳐질 위기에 처하자 ‘내 인생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B씨는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사례 5
A씨는 지방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까지도 그 지방에서 마쳤다. 취직도 그 지역에서 했다. 하지만 직장의 성격상 여러 지역을 옮기면서 근무를 해야 했다. 자살하기 2~3년 전부터는 근무지 옮김이 잦았다. 4~5군데를 옮겨 다녔다. 어떤 때는 3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했다. 자녀들이 청소년기라서 아내와 자녀는 한곳에 자리잡고 자신만 옮겨 다녔다. 옮길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사귀어야 하는 일이 A씨에게는 너무 힘들었다. 아내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곧잘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서울 발령이 났다. A씨가 고향을 떠나는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그는 정말 서울로 가기 싫었다. A씨가 하도 힘들어하자 아내는 “그럼 올라갔다가 정 힘들면 휴직하고 내려오라”고 말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날 A씨는 서울 근교에서 차에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했다. *자살예방상담전화 ‘ 1393 ’ /안의식·김상용기자 miracl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