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5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에 연루된 혐의로 이민걸(58)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 전·현직 판사 10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사진은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한동훈 3차장검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한 혐의로 전·현직 판사 10명이 검찰에 기소됐다. 지난달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게 법정 구속 판결을 내린 성창호 판사가 기소 명단에 포함됐고, 초미의 관심사였던 권순일 현 대법관은 제외됐다. 아울러 검찰은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 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는 5일 이민걸(58)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 전·현직 판사 10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 외에 이규진(57)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유해용(53)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신광렬(54)·임성근(55)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이태종(59)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심상철(62) 전 서울고등법원장, 성창호(47)·조의연(53)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방창현(46)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로써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는 전·현직 판사는 양승태(71)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2)·고영한(64) 전 대법관,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해 14명이 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은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에 개입하고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 모임인 국제법인권연구회 등을 와해하려고 시도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법원행정처 근무 당시 국민의당 의원들 재판을 심리한 재판부의 심증을 빼내 전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이 전 실장은 2016년 10∼11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선숙·김수민 의원의 보석 허가 여부와 유·무죄 심증을 알려달라는 국민의당 관계자의 부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헌법재판소 내부기밀을 불법으로 수집한 혐의와 옛 통진당 관련 재판에 개입한 혐의, 법관사찰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유해용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인 김영재 원장의 특허소송 관련 자료를 청와대 측에 누설한 혐의, 지난해 초 법원에서 퇴직할 때 재판연구관 보고서 등 내부 기밀을 무단으로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광렬 전 수석부장판사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의 체포치상 혐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울러 신 전 수석부장판사는 원정도박 혐의를 받은 프로야구 선수 임창용·오승환씨를 약식명령으로 사건을 종결하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당시 재판부는 정식재판에 넘기려 했고 이러한 재판진행 상황이 이미 전산에 등록됐음에도 신 전 수석부장판사가 뒤집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만약 문제가 될 경우 ‘담당 실무관의 입력 오류 때문’이라고 대응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신 전 수석부장판사의 혐의엔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검찰이 판사를 상대로 수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장전담 재판부를 통해 검찰 수사상황을 빼내고 영장심사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 혐의도 있다.
성창호·조의연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수사기밀을 보고한 혐의로 기소됐다. 성 판사는 지난달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법정구속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태종 전 서부지법원장은 집행관들의 비리 사건 관련 수사기밀을 보고받은 혐의로, 심상철 전 고법원장은 옛 통진당 의원들 행정소송 항소심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하도록 부당하게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방창현 전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의 요구를 받고 자신이 담당하던 옛 통진당 의원들 사건의 선고 결과와 판결 이유를 누설한 혐의를 받는다.
한편 권순일(60) 대법관 등 검찰 조사를 받은 전·현직 대법관들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권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재직하던 때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작성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법원행정처장 시절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민사소송 ‘재판거래’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차한성(65) 전 대법관도 기소되지 않았다. 이인복(63) 전 대법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할 당시 옛 통진당의 재산을 국고로 귀속하는 소송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하는 과정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그 역시 기소 대상에서 빠졌다.
검찰은 공소제기와 별개로 이 전 상임위원 등 기소된 판사를 포함한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사실을 대법원에 전달했다. 대법원은 이들의 비위내용을 검토한 뒤 징계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세 차례 자체적으로 벌인 조사를 기반으로 이 전 상임위원 등 법관 8명에게 정직·감봉·견책 등의 징계를 내린 바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비위가 드러난 판사들은 아직 징계 절차에 회부되지 않았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