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진단] 인위적 시장개입의 비극

[경제부 서정명 부장]
카드수수료·유통마진 등 통제
5G요금제 인가 신청도 퇴짜
'보이는 손' 휘둘러 시장왜곡
대출 난민·품질 저하 등 양산


정부의 인위적 시장개입이 경제질서를 뒤틀고 있다. 마치 도끼로 내려치듯 정부가 찍어누르는 수수료와 가격통제, 분양원가와 유통마진 공개 등으로 기업들은 거친 한숨을 토해내고 있고 일각에서는 헌법소원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추진하는 시장개입이 숱한 부작용을 쏟아내며 ‘시장개입의 비극’을 초래하고 있는 양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일 자문위원회를 열어 SK텔레콤이 인가 신청한 5G요금제를 되돌려보냈다. 5G요금제가 대용량·고가 구간만으로 구성돼 대다수 중·소량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통신사들이 야심 차게 새 서비스를 시작할 때면 어김없이 가격통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구각(舊殼)을 벗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분야는 더 가관이다. 카드사들이 현대·기아자동차를 대상으로 수수료 인상에 나선 것도 속내를 보면 정부의 개입 탓이 크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자영업자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정부는 카드사를 압박해 영세업자에 대한 수수료율을 내리도록 했다. 손해를 보충해야 하는 카드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율을 올릴 태세다. 정부는 뒷짐을 진 채 결국 대형 가맹점과 카드사들만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대출난민’도 양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서민들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법정 최고금리를 24%까지 내렸다. 대출금리 인하로 마진폭이 줄자 저축은행들은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승인을 거부했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결국 여기저기 떠돌다 대부업이나 불법 사채시장에까지 내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른바 ‘선(善)한 정책의 역설’이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정부의 유통마진 공개방침에 헌법소원을 낼 채비를 하고 있다. 공정위는 을(乙)의 위치에 있는 점주들을 위한 정책이라고 강변하지만 시장질서를 왜곡하는 처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건설회사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3월부터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민간아파트의 원가공개 항목이 기존 12개에서 62개로 늘어났다. 건설 업계는 시장원리를 침해한다며 볼멘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보이는’ 손을 휘저으면 시장질서는 비틀리고 왜곡된다”며 “정부는 ‘관제 가격’의 유혹에서 과감히 벗어나 시장 자율성을 존중하는 인식 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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