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업계가 카드 수수료 인하에 따른 수익 악화와 정부의 ‘간편결제(페이) 일변도 정책’에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페이 사업자에 유리한 정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신용카드 이용액이 총급여의 25%를 넘을 경우 초과분을 공제해주는 제도로 사업자의 탈세를 막기 위해 1999년 도입돼 일몰 기간이 연장돼왔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제로페이 등 간편결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신용카드의 소득공제율은 현재 15%인데 더 줄어들 경우 40%에 달하는 제로페이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국내 결제 시장에서 약 70%의 비중을 차지하는 신용카드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이 줄어들 경우 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치권까지 제로페이를 거들고 있는 형국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제로페이를 시연하며 제로페이 확산에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삼성페이·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 등 민간 결제 사업자가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관제형 페이’인 제로페이만 밀어주는 것은 ‘관치금융’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전 금융감독원장)은 ‘모바일 직불카드의 신속한 보편화를 위한 정책제언’ 보고서를 통해 “이미 카카오페이 등 민간 간편결제 사업자들이 존재한다”며 “단지 정부가 민간 사업자들을 정부 시스템에 통합하는 방식으로 모바일 직불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금융위원회도 카드 산업을 죄악시하며 핀테크 결제 사업자 육성에만 골몰하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 금융혁신기획단장은 지난달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을 발표하면서 신용카드 결제가 고비용 상거래 구조라고 지적하며 수년 내 간편결제 비중을 전체 결제 시장의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규제를 풀어 핀테크를 키우겠다는 것이 당국의 의도다. 금융위는 이번 혁신 방안을 통해 금융결제망 수수료를 10분의1로 낮추고 핀테크 결제 사업자에 50만원가량의 후불(신용)결제를 허용해주기로 했다. 이 밖에 간편결제 이용한도를 200만원에서 300만~500만원으로 확대하고 세제 인센티브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카드 업계는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여신전문금융업법에 근거해 각종 규제를 적용받아 팔다리가 묶여 있는 반면 핀테크 업체들은 금융사가 제공하는 기능을 가지면서도 이에 따른 책임은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핀테크에 신용 기능을 제공하는 방침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신용카드사는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등 신용거래에 따른 충당금을 적립하는 반면 이 같은 책임에서 벗어나 있는 핀테크 회사가 똑같은 사업자 혜택을 누리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핀테크 회사에 문제가 생겨 소비자에게 피해가 생기는 경우를 고려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세밀하게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면초가에 놓인 카드사들은 빅데이터 규제를 풀어달라고 아우성이지만 이 역시 요원한 실정이다. 지난달 말 8개 신용카드사는 금융당국에 ‘카드 산업 건전화 및 경쟁력 제고 태스크포스(TF)’에 빅데이터 규제 완화를 비롯한 열두 가지 건의사항을 제출했다. 현행법 체계로는 카드사의 빅데이터 사업 허용범위가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아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진보 시민단체들은 신용정보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 등 빅데이터 경제 3법의 개정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카드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고객 수가 곧 데이터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카드사는 핀테크에 비해 경쟁력이 압도적으로 높다”면서 “카드사가 빅데이터 기반의 플랫폼 회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