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용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실험실에서 연구원들과 양자 정보 변환 소자 기술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사진=한국연구재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고 하잖아요. 제 연구 동기이기도 한데 빛의 속도로 정보를 조절하고 제어할 수 있으면 언젠가는 빛의 속도로 동작하는 소자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3월 수상자인 최현용(42·사진)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양자역학 상태인 스핀과 밸리를 빛을 이용해 빛의 속도로 제어하면 지수함수적으로 급증하는 정보를 굉장히 빠르게 조절할 수 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고전적 정보처리 방법인 0과 1의 비트를 조절하는 것에서 나아가 2차원 판데르발스 양자 물질 플랫폼에 관한 연구를 통해 정보를 초고속으로 전달하고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펨토초 레이저(10-15s초)를 이용한 양자 정보 변환 소자 기술’을 연구하는 최 교수는 “현재는 실험실 단계에서 기술을 구현해 상용화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상업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제 기초연구가 확대돼 상용화된다면 현재 반도체 소자에 쓰이는 나노초(1ns=10-9s) 소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빨라질 것입니다. 10년 이상 지나면 컴퓨터나 휴대폰이 1,000배 정도는 빨라질 수 있는 양자 정보처리 소자가 개발될 수 있죠.” 그는 스핀과 밸리 두 개 큐빗의 양자 정보를 변환할 수 있는 이종접합 양자 소자를 제작하고 세계 최초로 이를 검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상온에서 빛과 전압만을 이용해 스핀과 밸리 정보를 제어해 정보 소자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소자 플랫폼을 구축한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전자는 전하뿐 아니라 스핀·밸리 자유도 등의 다양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전까지 모든 반도체 소자에서는 전하 정보만을 활용했는데 소자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전자산업도 발전해왔다. 하지만 소자를 더 작게 만드는 것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스핀과 밸리 같은 다중 자유도를 정보의 기본 단위로 활용해 현재 전자 산업이 갖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최 교수는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으로 큐빗을 연구한다는 관점에서 기존의 양자 기술과 비슷할 수 있지만 제 연구는 기존의 양자 기술과 달리 저차원 물질을 이용한 광학에 가깝다”며 “흥미롭게도 밸리 큐빗은 스핀 큐빗과 양자 얽힘 상태로 존재한다. 현재까지 잘 알려진 양자 기술의 큐빗과는 다른 연구 분야”라고 전했다. 밸리와 스핀이 매우 강한 양자 얽힘 상태로 존재하는데 각각의 밸리와 스핀 큐빗을 독립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은 지금까지 보고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최 교수팀은 서로 다른 성질을 갖는 3개의 2차원 판데르발스 물질을 접합해 밸리와 스핀을 독립적으로 측정했고 그 상태를 빛과 전압을 통해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 교수는 “기존 큐빗과는 다른 새로운 큐빗에 대한 연구를 했고 큐빗끼리의 정보 변환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음을 밝혀내 양자 정보처리 연구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그의 논문이 실린 것도 이 때문이다.
최현용 연세대 교수팀은 3종 접합 소자를 제작해 양자 정보 상태의 기본 단위인 스핀-밸리 큐빗을 상온에서 제어하고 원하는 큐빗 양자 정보를 손쉽게 변환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사진=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최 교수팀은 상온에서 밸리-스핀 정보 변환을 확인하기 위해 차세대 광응용 소재로 각광받는 텅스텐셀레늄(WSe2)과 위상절연체(Bi2Se3)를 단층 그래핀으로 매개해 연결한 이종접합 소자를 설계했다. 전이금속 디칼코게나이드 물질군에 속하는 텅스텐셀레늄은 차세대 광양자 정보 소재로 주목받는데 연구팀은 광전류 실험으로 밸리-스핀 변환을 상온에서 직접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미국·유럽에서는 전이금속이나 위상절연체로 굉장히 많은 복합 소자를 만들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현재 연구하는 물질 자체가 몇 년 안 됐는데 퀄리티가 좋지는 않은 상황이라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 그의 연구가 상용화되면 연산의 집적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면서도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고 고용량 정보처리와 양자 정보처리 등 차세대 정보 소자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이번 연구는 밸리-스핀 큐빗이라는 새로운 양자 정보 단위의 응용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양자기술을 적용해 고용량 정보처리 기술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후속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특허는 등록 완료했고 해외는 출원 중이다. 다만 산업화가 피부에 와 닿고 중요하기는 하지만 당장은 원천기술을 좀 더 확보하는 데 치중하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그는 “고품질의 물질을 만들어야 하고 지금은 실험실 수준에서 빠르게 측정할 수 있지만 일상적으로 굉장히 빨리하게 만드는 데는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