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홍기자 ppmmhh68@sedaily.com
국민연금의 수탁자 책임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전격 도입, 토종 행동주의펀드 KCGI(강성부펀드)의 한진칼에 대한 경영 참여, 의결권 대리 행사(섀도보팅) 폐지로 목소리를 키우는 소액주주, 그리고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현대차 압박까지. 현재 국내 기업 현장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모두 행동주의의 확산이라는 뿌리에서 뻗어 나간 가지들이다. 기업 경영에 대해 주주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권리가 확대되고 정부 역시 이를 적극 권장하면서 올해를 주주권 확대의 원년으로, 이달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분수령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그만큼 기업들은 사실상 ‘아노미’ 상태다. 어느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주주권 행사가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방패’는 왜소하다. 각종 규제로 운신의 폭이 좁고, 무엇보다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목소리를 ‘기업의 기득권 지키기’로 치부하는 인식이 매우 견고한 탓이다.
현재 국내 상장사들의 취약한 지분 구조는 ‘주총 혼란’ 우려를 키우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정기주총에서 의결정족수(발행 주식 수의 4분의1 이상) 미달로 감사·감사위원 선임 안건이 부결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올해도 줄지 않고 오히려 많아지는 것은 현행 상법이 감사 선임 안건에 대해 대주주(최대주주+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 때문이다. 감사 선임 안건만 문제가 아니다. 상장사 다수가 지분 구조상 취약점을 갖고 있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최대주주·특수관계인 지분을 다 합쳐도 보통 결의 요건에 미달하는 곳이 408개(21.2%)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주주·특수관계인에 5% 이상 주주 및 기관투자가 지분을 모두 끌어모아도 의결정족수에 못 미치는 곳도 271개(14.1%)에 이른다. 감사·감사위원 선임처럼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이 적용되는 안건이 아닌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다.
행동주의펀드는 이 같은 취약점을 파고든다. 국민연금과 KCGI 등이 한진칼을 상대로 주주권 행사를 선언하자 벌써 재계와 증권가 등에서는 대주주 지분 비율이 낮은 몇몇 기업을 다음 타자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상장사들은 상법 개정으로 3%룰 폐지 등을 비롯한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현재 법무부를 비롯한 정부는 다중 대표소송제·집중투표제 등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내용을 담는 방식의 상법 개정이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자본시장을 담당하는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전자투표제 확산과 이른바 ‘슈퍼 주총일(주총 집중)’을 피하기 위한 자율 분산 프로그램, 면밀한 모니터링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으나 미봉책에 그친다는 우려가 많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변죽만 울리는 대책으로 예측 가능한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인지 걱정스럽다”고 성토했다.
그러는 사이 외국계 펀드는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 돌턴인베스트먼트가 현대홈쇼핑의 이번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감사위원 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지분 구조상의 취약점과 3%룰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돌턴인베스트먼트 측은 “비핵심사업에 투자하거나 미미한 주주환원을 주요 안건에 올렸지만 사외이사들이 건설적인 반대를 하지 않고 감사위원들이 감시 및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돌턴인베스트먼트는 지난 2017년 미국계 투자회사로는 처음으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했으며 최근 한국·미국 기관들과 함께 ‘한미투자연대’를 구성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섰다. 국내 운용사 중에서는 KCGI와 밸류파트너스가, 미국은 브랜디스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와 루안·커니프 & 골드파브가 투자연대에 동참했다. 이들 투자연대는 지난달 정부와 국민연금에 기업 지배구조 기준을 강화하고 배당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주주제안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을 겨냥한 국내외 펀드의 참여가 이뤄질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조양준·조윤희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