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외국인들이 차례로 진료를 받고 있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들을 위해 의사·약사들이 무료 봉사하고 있다./안산=백주연기자
의료서비스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높은 의료비 부담에 놓인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이는 외국인들의 삶의 질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내 전염병 확산의 위험성도 높인다는 지적이다.
10일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건강보험가입자격을 가진 합법체류 외국인(149만명)의 건강보험가입률은 2017년 59.4%로 내국인 가입률(95.6%)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즉 건강보험이 있는 사람보다 5배나 더 높은 진료비를 내야 하는 합법체류 외국인이 60만여명에 달하는 것이다.
상용근로자인 고용허가제(E-9) 외국인의 건강보험가입률도 70% 수준에 머문다. 지난 2015년 기준 건설업에서는 54.9%만 건강보험에 가입했으며 농축산업과 어업의 건강보험 적용률은 각각 16.1%, 7.7%에 불과했다. 농업의 경우 건강보험 가입에 필요한 사업자등록증 없이 ‘영농규모 증명서 사본’만 있어도 고용허가제 노동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장은 “중국·고려동포는 가사·간병·식당 등 직장 건강보험 가입이 안 되는 근로자가 많다”고 전했다.
물론 이들은 건강보험 지역가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전년도 건강보험 가입자의 평균보험료(10만3,080원) 이상을 내야 한다. 이는 월급의 6.24% 보험료율을 적용하는 직장가입에 비해 부담이 2배에 달하기 때문에 가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는 “경험적으로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70~80%는 건강보험이 없다”며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의 경우 진료와 치료를 한 번 받는 데 5만~10만원씩 깨진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가입자격 자체를 갖지 못한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은 기타(G-1) 비자 소유자들(2019년 1월 현재 3만76명)이다. 이들은 임금체불 등으로 진정·소송 중인 이주노동자, 가정폭력 등으로 소송 중인 결혼이주민, 그리고 난민신청자와 인도적체류자 등이다. 이 중 인도적체류자 외에는 지역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또 35만여명의 불법체류자는 당연히 건강보험에서 배제돼 있다. 실제로 한국행정학회에서 아동이 있는 가정의 부모 643명에게 조사한 결과 불법체류자의 건강보험 미가입률은 96.4%에 달했다.
정부에서 이들을 완전히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외국인 근로자 등 소외계층 의료서비스 지원’ 사업은 건강보험이 없는 외국인 근로자와 난민신청자 등이 대상이다. 이들이 입원·수술을 받을 때 이 제도로 진료비의 90%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외래진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 사업자등록이 돼 있지 않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이용할 수 없다.
10일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외국인들이 무료 진료를 받고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약을 받아가고 있다./안산=백주연기자
이러한 사각지대를 해결하고자 이주민지원단체들은 전국 각지에서 주말 무료진료소를 열고 있다. 또 한국이주민건강협회는 건강보험이 없는 이주민들을 모아 의료공제회를 운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료진료소는 응급·중증환자를 진료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며 민간 의료공제회도 비급여 진료비 등의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정부에서 외국인근로자 고용 사업장의 건강보험 가입을 철저히 관리·감독하고 난민신청자나 불법체류자 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의료서비스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정혁 안산 외국인노동자의집 대표는 “의료서비스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은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내국인의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외국인들에 대한 과도한 의료 지원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외국인이 잠깐 들어와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출국하는 사례가 발견돼 ‘먹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외국인·재외국민 지역가입자 건강보험의 2013~2017년 재정수지 적자액은 7,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직장가입자를 포함한 전체 외국인의 재정수지는 최근 5년간 1조1,000억원 흑자였다. 또 이 같은 먹튀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외국인의 건강보험 지역가입을 위한 최소 체류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도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조권형·백주연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