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유스티치아의 눈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세계 각국의 법원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 조각상. 이 여신은 한 손에 검이나 법전을 들고, 다른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검과 법전은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겠다는 뜻이고, 저울은 옳고 그름을 공평하게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한 가지 더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여신상의 눈이 가리개로 가려져 있다는 것.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눈을 크게 떠야 할 것 같은데 눈을 왜 가렸을까. 시각을 통한 편견과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다. 검과 법전·저울뿐 아니라 눈까지 가린 것은 정의를 실현하려면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기업 경영에서 공명정대함에 가장 무게를 둬야 하는 분야가 인사(人事)다. 인사가 만사(萬事)라 하듯 인사가 잘 되면 회사가 바로 설 수 있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 분명하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며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없어야 한다.


인사가 제대로 될 때 회사 내부의 신뢰 은행에 잔고가 쌓인다. 쌓인 신뢰가 두둑해질 때 회사는 거창한 구호 없이도 잘 돌아간다. 공자는 신의 없는 리더십을 멍에 없는 수레에 비유했다. 요즘 말로 하면 핸들 없는 자동차다. 구성원 사이에 강한 신뢰가 있을 때 분위기가 활기차고, 위기 때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 회사는 신뢰를 바탕으로 원칙이 바로 선 회사,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종합에너지기업이 되고자 한다. 원대한 꿈을 이루려면 조직을 재정비해야 한다. 그래서 ‘인사 옴부즈만(ombudsman)’을 만들었다. 옴부즈만제도는 행정기관의 불법행위를 견제하기 위해서 스웨덴에서 200여년 전 만들었던 행정 감찰관 제도다. 우리 회사에서는 채용과 이동·승격 등 인사 분야에서 잘못된 사례를 바로잡고자 도입했다. 우리 회사는 발전소들이 오지에 위치하다 보니 도심과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기를 바라는 직원들이 많다. 이런 이슈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사외위원으로 독립 전담 조직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물론 공정함을 최선의 가치로 두고 애쓰는 담당 부서들이 있지만 없던 제도를 새로 들인 것은 어떠한 빈틈도 허용하지 않기 위함이다. 원자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다섯 겹의 방호벽이 있듯 인사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여러 겹의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 제도를 도입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성과를 운운할 단계는 아니지만 위대한 일은 작은 정성들이 모일 때 이뤄진다.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지켜나가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사실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인사를 통해 우리 회사가 신뢰 부자가 되고 직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게 되기를 기대한다. 직원들이 마음 편하게 일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회사가 성장하고 미래의 국가 에너지 안전과 안정적 공급도 가능해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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