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환 한국투자신탁운용 상품전략본부장
‘도넛 모형’은 21세기의 존 케인스로 불리는 영국의 여성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에 의해 처음 제시된 이론이다. 이 이론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경제개발은 도넛에서 빵이 차지하는 공간 안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도넛의 안쪽 공간은 사회적 기초에도 못 미치는 결핍의 영역을, 도넛의 바깥쪽 공간은 지구환경의 생태적 내성(tolerance)을 넘어선 과잉의 영역을 의미한다. 경제 시스템이 이 둘 안 도넛의 영역에 머물러야 경제는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한정된 자원과 닫힌 환경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경제성장에 대해 점점 더 진일보한 의견을 가지게 됐다. 미세먼지가 심각한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성장이라는 결과가 모든 과정의 면죄부가 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결과에 앞서 과정의 정당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들린다.
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재무적 성과(결과)만을 판단하던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이 가진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비재무적 요소(이를 합쳐 ESG라 부른다)에 따른 사회적·윤리적 가치를 반영한 투자 방식이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유엔 역시 지난 2006년 이후 책임투자원칙(UNPRI)으로 사회책임투자를 적극 장려하고 있으며 영국 등 유럽이 주축이 된 이 원칙에 국민연금도 2009년 가입해 사회책임투자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그동안 ESG 투자는 연기금 등 일부 기관투자가들에만 한정된 투자 방식이었다. ESG를 고려한 투자가 바람직하고 착한 투자인 것은 분명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투자 대상을 제한하는 요건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 대상의 제한은 곧 좋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의 제한이기도 하기에 굳이 투자에서 사회적 책임까지 떠올려야 할 필요가 없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메리트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다. 자본시장에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영향력이 점차 커져가는 추세에서 그들이 책임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는 투자 방식을 마냥 외면하는 것도 현명한 생각은 아니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미인대회를 떠올려보라. 시대정신을 반영한 미인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처럼 시장의 관심 및 수요가 올라가면 그 기업의 시장가치는 당연히 높아지게 마련이다. 시대정신을 투영하지 못하는 회사의 평판이 어떻게 무너지고 시장에서 소외돼가는지 우리는 국내외를 통틀어 여러 번 봐왔다.
ESG 투자에 조금씩 관심을 가져보자. 지속 가능한 성장, 경제 민주화에 일조를 했다는 기분 좋은 투자, 뿌듯한 투자를 넘어 좋은 성과를 약속하는 투자가 될 수도 있다.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이들이 더 큰 보상을 얻어야 좋은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