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재무적투자자(FI)와 풋옵션 갈등을 빚고 있는 신창재(사진) 교보생명 회장이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통한 유동화, FI 지분의 제3자 매각 추진, 기업공개(IPO) 성공 후 차익보전 등의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했다. 금융권에서는 FI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과 함께 FI들도 신 회장이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가격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FI와의 풋옵션 갈등과 관련해 로키 전략을 유지해오던 신 회장이 새 협상안을 들고 나오면서 FI와의 갈등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신 회장은 최근 FI들에 ABS 발행을 통한 유동화, FI 지분의 제3자 매각 추진, IPO 성공 이후 차익보전 등의 새로운 협상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ABS 유동화는 특수목적회사(SPC)를 만들어 FI 지분을 유동화한 후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를 모은 뒤 이 자금으로 FI에 되돌려 주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풋옵션 가격조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다. FI들은 주당 40만9,000원을, 교보생명 측은 주당 20만원 초반대를 제시하면서 이번 갈등이 불거졌다는 점에서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서다.
신 회장은 풋옵션이 걸려 있는 FI 지분 29.34%에 대한 3자 매각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인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FI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IPO 성공 후 차익보전안도 제시했지만 IPO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도 사전에 ‘풋옵션 갈등’이 선제적으로 해결돼야 하는데다 최근의 증시 상황을 감안하면 IPO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FI를 설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신 회장이 FI와의 협상을 위해 파격적인 안을 제시한 것이지만 현실성을 감안하면 FI의 압박 소나기를 피해가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동원 가능한 모든 카드를 제시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신 회장이 제시한 협상안으로 FI를 설득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FI들도 새 협상안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한 FI 관계자는 “교보생명 측이 계약을 지키지 않은 지 몇 년이 지나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중재를 하게 된 것”이라며 “FI로서는 주당 40만9,000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데 왜 20만원짜리 협상안을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주당 40만원을 주지 않으면 다른 협상의 여지는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IPO 후 차익보전안에 대해서도 FI 측은 “(교보생명이) 거래소 상장예비심사에 통과할지, 시가가 어떻게 형성될지 모르겠지만 신 회장은 IPO 이후 본인의 재산으로 주당 40만원을 만들어 주겠다는 이야기인데 현실성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FI도 따지고 보면 여러 주주 중의 하나인데 FI들과 IPO 후 생겨날 새로운 주주들이 각자의 교보생명 주식에 대해 다른 가격을 받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실제 교보생명이 상장되면 FI들과 나머지 소액주주 간의 조건이 차이가 생겨나는 셈인데 장외에서 대주주와의 계약이라고 우기면 시장에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며 “FI들은 IPO를 찬성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IPO는 일러야 오는 9월에나 가능하지만 중재는 재판부 구성 통지 후 100일 이내 판결이 도출된다.
새 협상안에도 FI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일부에서는 FI들이 현실 가능한 지분 가격을 요구하는 선에서 절충을 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 회장을 코너로 몰아 경영권 분쟁으로 몰아가면 결국에는 여론전을 해야하는데 양측 모두 상처만 입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선대 회장이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의 창립 이념으로 교보를 민족기업이자 60년 보험 명가로 키워 왔다”며 “경영자로서 그동안 창립정신을 계승하고 이해관계자의 공동발전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민족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반면 FI들과 각을 세우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 중”이라며 최상의 시나리오는 물론 최악의 시나리오도 대비하고 있다는 뜻을 시사했다. ★본지 3월12일자 10면 참조
신 회장은 이어 임직원들에게 “회사와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니 임직원들과 컨설턴트들은 동요하지 말고 영업활동 등 맡은 바 소임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과 다른 여러 가지 억측들이 난무해 임직원들이 동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유주희·임세원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