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폐쇄 이후 썰렁한 모습의 미국 제인스빌의 GM 공장. /사진제공=세종서적
‘미국 제인스빌 자동차 생산 공장은 휘황한 불빛 아래 꽉 들어찬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제 곧 공장을 떠나 불확실한 미래와 마주 서야 할 노동자들이 연금으로 생활하는 퇴직자들과 나란히 도열했다. 지에머(GMer)들 모두 구불구불한 조립라인 위로 움직이는 제인스빌에서 마지막으로 생산된 자동차 ‘타호’(GM의 대형 SUV)를 뒤따른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린다.’
2008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23일 제인스빌 GM공장이 폐쇄되던 날에 대한 생생한 묘사다. 이 장면은 미국 최대 자동차 생산업체의 가장 유서 깊은 공장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짐을 의미한다. 또 부족함이 없던 평화로운 중산층 도시 제인스빌이 신빈곤층 지역으로 점차 미끄러져 내려갈 것임을 예고한다. 책은 미 자동차 도시 제인스빌의 GM 공장 폐쇄가 해고자와 가족, 나아가 지역 사회에 어떻게 ‘사회적 재난’이 됐는지에 대한 7년간의 기록을 담았다. 거대한 경제적 재앙에 대처하는 공공 및 민간 부문의 자세, 그것에 작용해 일어나는 사회적인 반응, 실업에 따른 구체적인 삶의 변화 등을 현미경을 대고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특히 제인스빌의 몰락은 10년전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난해 5월 군산의 한국GM 공장이 폐쇄됐고 거제를 비롯한 제조업 도시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유엔이 인공지능(AI), 스마트 공장 등으로 인해 2030년까지 일자리 중 20억 개가 사라질 우울한 전망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곧 우리의 이야기기도 하다.
삶의 터전이 없어진 제인스빌 사람들의 삶은 참혹하다. GM은 공장 가동 중단을 발표하기 몇 주 전 두 번째 교대근무 조를 없앨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날 해당 근무 조에서 27년간 일했던 60세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이후 이 인근 지역의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배로 증가했다. 또 GM에서 13년 일한 한 해고 노동자 집안 이야기에서는 가장의 실직이 어떻게 가족의 삶을 위협하는지를 넘어 그 안에서 싹트는 ‘짠’하고 애틋한 가족애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버지가 실직하자 쌍둥이 딸은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그 돈으로 가족들의 음식을 구입한다. 이때 쌍둥이 자매는 부모가 부끄러운 감점을 느끼지 않도록 어떻게 장을 보러 가자고 제안할 지 섬세하게 대본을 짠다. 결코 허구는 따라갈 수 없는 리얼리티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책은 실직이라는 ‘사회적 재난’으로 인한 고통만을 전하지 않는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사람들과 공동체의 인간적인 모습을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고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을 도우려 고군분투하는 사회복지사, “제인스빌의 미래는 밝을 것이며, 따라서 ‘낙관주의의 대사’가 돼야한다”고 독려하는 기업인, 제인스빌 출신으로 이곳을 터전 삼아 성장한 공화당 정치인 등 다양한 인물들을 포착해낸다. 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한 재교육과 같은 중요한 정책 이슈 또한 깊이 다룬 점도 책의 장점이다. 1만8,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