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워치] "부장님 전 약속이…" 이 대리는 오늘도 '혼밥'

■ 직딩의 점심, 쉼표일까 느낌표일까
☞ 상사와 부하직원의 '점심이몽'
"밥이라도 마음 편히 먹고 싶다"
젊은 직원들 '회식형 점심' 거부
"소통 원하는데…" 상사는 불만


서울 강남의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근무하는 입사 9년 차 신성현(37) 과장은 3개월 전부터 점심 혼밥족의 길을 택했다. 점심시간 동안 회사 근처 식당에서 넷플릭스 동영상을 보며 혼자 밥을 먹는 게 전부지만 이 시간만큼은 업무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어서다. 그는 “회사에서 내내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하루 종일 대화하는 것에도 지쳐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많다”며 “점심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보내고 싶은 마음에 혼밥 후 오후 업무에 복귀한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근무 중인 이청우(32)씨도 점심시간에는 회사 동료들이 아닌 지인과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는 편이다. 약속이 없는 날에는 굳이 상사와 밥을 먹는 대신 근처 카페에서 간단하게 혼자 식사를 하고 회사로 돌아온다. 그는 “밥이라도 맘 편히 먹고 싶은데 상사와 밥을 먹으면 식사시간에도 일 얘기가 빠지지 않아 업무 시간의 연장인 느낌을 받는다”며 “점심시간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시간이 아니라 일과 일 사이에 쉼표를 찍는 휴게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점심시간을 업무 시간의 쉼표로 활용하는 직장인들이 늘면서 상사와 직원들은 오늘도 ‘점심이몽’을 꿈꾼다. 특히 연차가 높지 않은 젊은 직원들은 상사와 함께 단체로 이동해 식사를 하는 회식형 점심을 거부하고 나만을 위한 한 시간을 찾아 떠나고 있다. 오피스 밀집지역의 편의점이나 식당·카페에서 혼밥을 즐기는 직장인들의 모습도 이제는 흔한 풍경이 됐다.


점심시간에 대한 직장인들의 인식도 최근 들어 급변하고 있다. 조사 전문업체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인의 66%가 점심시간의 가장 큰 의미는 ‘휴식’에 있다고 응답했다. 이와 함께 직장인 3명 중 1명은 점심시간이 회사 내 감정노동을 피하는 시간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물론 사무실 곳곳에서는 점심 동행을 거부하는 후배와 이를 낯설게 받아들이는 상사의 불편한 동거도 이어지고 있다. 한 금융사 부장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팀원들의 애로사항이나 고민을 들어보고 싶은데 요즘 젊은 직원들은 저녁 회식은커녕 점심 식사를 함께하는 것조차 꺼린다”며 “회사에서는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하지만 같은 부서원끼리도 제대로 소통할 창구가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주 52시간 근로 시스템이 확산하면서 저녁 회식도 줄어 이 같은 불만은 늘어나고 있다. 한 대기업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는 임원은 “점심시간은 그나마 팀원들이랑 사적인 얘기도 하면서 집은 어딘지, 관심사는 무엇인지 등등 그 사람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최근에는 퇴근 시간이 앞당겨지면서 저녁 회식을 제안하기도 어려운 분위기인데 점심마저 같이 먹기를 거부하는 팀원들이 많아져 젊은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푸념했다.

점심시간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이는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요기요’가 서울 지역 주요 직장인 밀집지역 6곳의 주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배달 앱을 이용해 점심 식사(오전11시~오후1시 주문량 집계)를 주문하는 직장인 혼밥족들의 주문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62.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요기요 관계자는 “일과 시간에도 개인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동료와 함께 식사하는 대신 혼밥을 즐기며 여유를 갖고 싶은 직장인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며 “혼자 간단하게 먹을 식사를 주문하는 고객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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