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에서 벌어진 최악의 총격 사건은 극우 백인우월주의자가 치밀하게 계획한 테러행위로 드러났다.
뉴질랜드 사회를 공포에 빠뜨린 이날 참사는 크라이스트처치 중심부 해글리공원에 위치한 마스지드 알 누르 모스크와 이곳에서 다소 떨어진 교외의 린우드 마스지드 모스크에서 벌어졌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알 누르 사원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람잔 알리는 “오후1시42분께 총격이 시작됐다”며 “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약 20분간 마구 총을 쐈다”고 전했다. 린우드 마스지드 모스크에서도 군 헬멧 등으로 중무장한 범인이 모스크로 뛰어드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현지 매체들은 보도했다.
테러범은 이슬람교 신자들이 많이 모이는 금요일 예배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현지 당국은 부상자 중에 어린이가 포함돼 있으며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사건 발생 직전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총기 난사를 생중계하고 이민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선언문까지 발표해 뉴질랜드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호주 데일리메일은 이날 체포된 용의자 4명 가운데 1명이 호주 국적의 브렌턴 태런트(28)이며 그가 범행 수시간 전 자신의 계획을 상세히 담은 74쪽의 온라인 선언문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을 호주에서 태어난 28세 백인이라고 소개한 태런트는 ‘새로운 사회로의 대전환’이라는 제목의 74쪽 분량의 성명에서 “우리의 땅을 침략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민율을 직접적으로 낮추려는 의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5년 미국 흑인 교회에서 9명을 총기로 살해한 딜런 루프나 2011년 노르웨이 청소년 캠프에서 77명을 숨지게 한 총기난사범 브레이비크의 글에 감명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디오 게임인 ‘포트나이트(Fortnite)’가 자신을 킬러로 훈련시켰다는 내용도 올렸다.
선언문에 따르면 태런트는 세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조차 대규모 이민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뉴질랜드를 공격 장소로 골랐다. 그는 “2년 동안 공격을 계획했으며 최근 3개월 동안 구체적으로 후보지를 물색했다”며 “한 명의 백인 남성이라도 살아 있는 한 그들은 결코 우리 땅을 정복할 수 없으며 우리들을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굳이 규정한다면 자신의 행위는 점령군에 대한 게릴라 행위로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SNS로 총기난사 현장을 생중계한 인물로도 의심받고 있다. 태런트로 추정되는 남성은 차를 타고 모스크로 가는 과정과 범행 순간을 카메라로 촬영해 이를 페이스북으로 내보냈다. 헬멧에 부착한 카메라로 찍은 것으로 보이는 17분 분량의 영상에는 사람들이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과 함께 총격을 받아 죽거나 부상당한 이들이 사원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영상 속 테러범은 온라인게임을 하듯 총을 난사했다. 그는 사원 밖에 세워둔 차량으로 돌아와 무기를 바꾸고 다시 사원으로 들어가 총을 쏘기도 했다. 이후 다시 차에 올라타 “(총을) 겨냥할 시간도 없었다. 타깃이 너무 많았다”고 혼잣말을 했다.
뉴질랜드 경찰은 이날 남성 세 명과 여성 한 명으로 구성된 용의자 네 명을 체포하고 그들의 차량에서 두 개의 폭발물을 발견해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체포된 네 명 가운데 주범은 한 명이며 두 명은 공범이다. 나머지 한 명은 범행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건 직후 크라이스트처치의 모든 학교와 의회 건물이 봉쇄됐고 당국은 모스크 방문 자제를 요청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우리가 테러범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은 포용성과 자애·동정심을 대표하는 나라이며 이런 가치를 필요로 하는 난민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공격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15일(현지시간)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시 모스크 인근에서 부상자가 앰뷸런스로 옮겨지고 있다. /EPA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