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미국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조사할 때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양자 협의를 처음으로 요청했다. 현재 공정위가 추진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과정에서 미국 기업들의 방어권 강화 요구를 반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협의가 개시되면 미국 측은 미국 기업들의 ‘증거자료 접근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은 지난 15일(현지시간) 한미FTA의 ‘경쟁 관련 사업’에 대한 협의를 한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USTR은 과거 무역장벽보고서 등을 통해 이 같은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지만 한미FTA 상의 협의를 공식 요청한 것은 FTA 발효 7년 만에 처음이다. USTR은 “한국 공정위의 일부 심리가 미국 이해당사자에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검토하고 반박할 기회를 포함해 특정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며 “최근 제시된 한국의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이 우려를 해소하지 못했다”고 협의 요청 이유를 밝혔다. 미국 측의 요청에 대해 한국 정부는 “공정위의 사건처리 절차는 FTA 규정에 합치한다”면서도 미국 측의 합의 요청을 받아들여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국 측이 미국 기업들의 ‘증거자료 접근권’을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지난 2016년12월 공정위가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인 퀄컴에 대해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EP) 남용행위로 1조300억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을 당시를 전후로 미국 측이 한국에 제도 도입을 주장해왔던 사안이다. 증거자료 접근권은 법 위반 혐의 입증과 관련된 증거자료를 제재 대상자인 피심인도 볼 수 있는 권리다. 공정위가 조사를 하면서 확보한 모든 증거서류 등을 미국 기업이 열람해 반박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기업들은 한국의 방어권이 미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다고 판단해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등 관련 제도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다”면서 “디스커버리 제도는 국내 사법 제도에 도입되지 않아 공정위가 단독으로 이를 들여오기는 어려워 이번 협의에서는 증거자료 접근권 등에 대한 요구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재판이 개시되기 전에 당사자 서로가 가진 증거와 서류를 상호 공개하는 제도로 미국에는 도입돼있다./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