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 임진혁기자
최근 국내 통신 업계는 경쟁하듯 ‘세계 최초’를 쏟아냈다. 인터넷 속도, 자율주행차, 홀로그램 등 분야도 제각각이었다. 업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하는 ‘최초’의 성과들만 보면 5세대(5G)는 물론 인공지능(AI)이나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4차 산업혁명에서 한국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최초’라는 수식이 세밀한 분야까지 파고들다 보니 혼란과 오해도 적지 않았다. 이달 초 SK텔레콤이 ‘와이파이 6’ 서비스와 관련해 국내 유일·최초를 강조하자 KT는 이 발표가 틀렸다고 반박 자료를 냈다. LG유플러스가 세계 최초의 5G 자율주행차 시연을 공개한 날 이미 SK텔레콤과 KT의 자율차 시연을 본 기자들은 ‘무엇이 최초냐’고 연거푸 물었고 “5G 기술 상용화 후 일반도로에서 자율주행한 것이 최초”라는 답이 돌아왔다. KT의 ‘세계 최초 기가인터넷 500만 돌파’ 자료는 세계는 차치하고 국내 최초라기에도 울림이 크지 않았다.
이처럼 흔한 ‘최초 경쟁’을 두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랜 관행이니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전했다.
포장만 화려한 최초 타이틀 집착은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7년부터 올 3월을 ‘세계 최초의 5G 스마트폰 상용화’ 시기로 박아둔 정부의 계획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한국만 떠들썩한 사이 미국은 오는 4월11일 상용화를 예고했고 내뱉은 말을 주워담기 어려운 한국으로서는 상대(미국)의 페이스에 맞춰 어떻게든 떠밀리듯 4월10일 이전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최초 경쟁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경쟁을 촉발하고 업계를 주도하거나 표준을 제시함으로써 실리에 한 발 더 다가갈 토대도 된다. 그러나 ‘직지심체요절’보다 1세기 뒤에 나온 ‘구텐베르크 성서’가 역사적으로 더 주목받았고 창업시장에서도 아이디어를 내세운 ‘스타트’업보다 수익 모델을 만들어 지속가능성을 확보한 ‘스케일’업이 의미 있듯 누가 최초인지는 요체가 아닌 듯하다.
‘속 빈 강정’ 같은 세계 최초보다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 꽉 찬 내실이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사실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소리다. 그런데도 여전한 ‘최초’에 대한 집착을 보면 이 의미가 어디를 향하는지 궁금해진다. 분명 고객이나 국민은 아닌 것 같다.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