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선희(가운데)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평양에서 외신기자들과 외국 외교관을 대상으로 긴급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평양=AP연합뉴스
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 무산 이후 미국과 북한 간에 긴장감이 팽배해진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와 관련해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 거리감을 유지해온 러시아는 최근 대북 교류를 부쩍 늘렸고 중국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조만간 남북한을 연쇄 방문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제재가 장기화되거나 강화될 경우에 대비해 대안적 활로를 마련할 필요가 있는 북한과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겹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무역과 외교 등에 있어 각각 미국과 껄끄러운 이슈를 갖고 있어 북중러의 밀착이 오히려 북미 대화 재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우려된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 정부도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교섭본부장에게 러시아·중국 등을 찾도록 하는 등 주변국 동향 파악에 나섰다.
18일 외교 소식통 등에 따르면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지난 15일 대미 강경 기자회견에 나섰지만 당장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무력시위 재개에 나설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부 핵심관계자는 “최 부상의 발언은 미국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으로서는 섣불리 움직이면 나중에 쓸 협상 카드가 없어지고 추가 제재 위험성만 커진다”고 말했다.
대신 북한은 전통적 우군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북한 노동신문에 따르면 14일 모스크바에서 북러 외무 차관이 만나 정치 분야 고위급 접촉과 교류 강화, 한반도 문제 상호 지지 등에 대해 합의한 데 이어 러시아 측 유력인사들도 방북에 나섰다. 특히 오는 21일까지 북한을 방문하는 러시아 상원 대표단에 세르케이 키슬랴크 상원 외교위원회 부위원장이 포함된 점이 눈에 띈다. 키슬랴크 부위원장은 주미 러시아대사 출신으로 ‘러시아 스캔들’과도 관련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노이 담판 무산 이후 침묵을 지속해온 중국에서는 아예 시 주석이 다음달 직접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에 따른 관례적 답방 차원이기도 하지만 북한이 중국에 구원투수 역할을 요청하고 있는데다 한반도에서의 적극적인 역할을 스스로 강조해온 중국으로서도 해결사 역할에 나설 시점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의 한반도행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다음달 말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 정상포럼에서 북중러 정상이 동시 회동할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18일 오전 러시아 방문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연합뉴스
북중러 밀착이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우리 정부에서는 이 본부장이 상황 파악에 나섰다. 이날 러시아행 비행기에 오른 이 본부장은 “최근 러시아가 북한과의 접촉이, (특히) 고위급 접촉이 많았다”며 “지금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관련국들과 협의를 긴밀히 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러시아에 이어 중국 방문 일정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