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 매킬로이가 18일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시상식에서 황금 트로피를 든 채 바닥이 황금빛으로 제작된 골프화를 내밀어 보이고 있다. /폰테베드라비치=AFP연합뉴스
로리 매킬로이(30·북아일랜드)는 골프장 안팎에서 가장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선수 중 하나다. 아마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 다음일 것이다. 웨이트트레이닝에 매달리며 근육량을 늘리면 스윙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걱정과 비판이 나왔다. 테니스 선수와 교제하던 당시 여자친구를 응원하러 가면 골프에 집중해야 한다는 쓴소리가 전문가들과 팬들 사이에 쏟아졌다. 최근 잇따른 우승 경쟁에도 마무리가 좋지 못하자 라이더컵(미국-유럽 대항전) 유럽팀 단장을 지낸 폴 맥긴리는 언론에 “큰 대회를 척척 우승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특히 최종 라운드에 자신감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찌감치 우즈의 뒤를 이을 슈퍼스타로 주목받다 보니 조금만 부진하거나 훈련에 소홀한 듯한 모습이 보이면 우려와 비판이 줄을 잇는다.
18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TPC소그래스(파72)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주변의 의심과 걱정에 대한 매킬로이의 완벽한 답변이었다. 총상금 1,250만달러, 우승상금 225만달러(약 25억5,000만원)가 걸린 최대 상금 골프대회에서 매킬로이는 16언더파로 1타 차 우승을 달성했다. 364일 만의 우승으로 PGA 투어 통산 15승째다. 세계랭킹 6위에서 4위로 올라섰고 시즌 누적 랭킹인 페덱스컵 포인트에서는 1위로 올라갔다. 아일랜드와 주변국의 최대 명절인 성 패트릭 데이에 완성한 우승이라 더 뜻깊었다.
‘제5의 메이저’인 플레이어스와 페덱스컵,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시리즈를 우승하고 메이저도 2승 이상 거둔 선수는 매킬로이와 우즈뿐이다. 매킬로이는 “최근 몇 주간 우승 근처에서 돌아섰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우승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1년간 챔피언조 경기 아홉 번 중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면서 뒷심 부족 얘기도 나왔지만 그는 역전 우승으로 우려를 불식시켰다.
올해 6개 출전 대회에서 매번 톱6에 진입한 매킬로이는 4라운드 스코어만 따지면 올 시즌 115위일 정도로 최종 라운드에 약했다. 지난주 아널드 파머 대회에서도 마지막 날 챔피언 조로 나서고도 공동 6위에 그쳤다. 1타 차 공동 2위로 출발한 이날 또한 불안했다. 4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적었다. 하지만 버디 2개와 보기 1개, 더블보기 하나로 1타를 잃은 전반과 달리 후반 9홀에서는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타를 줄였다. 14번홀 보기 뒤 15·16번홀 연속 버디로 분위기를 바꾼 게 결정적이었다. 그중에서도 페어웨이 벙커에서의 두 번째 샷을 정확한 타격으로 그린에 올리고 버디를 잡은 15번홀(파4)이 압권이었다. 이날 매킬로이의 평균 드라이버 샷은 310.5야드, 그린 적중률은 83.3%에 이르렀다. 앞선 사흘간 옥에 티였던 퍼트도 이날은 퍼트로 줄인 타수가 1.5타일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매킬로이는 대회 전 후원사 나이키로부터 금빛 골프화를 지원받으며 “나는 황금이 좋아요”라는 영화 ‘오스틴 파워’의 대사를 익살스럽게 따라 했는데 결국 플레이어스 황금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이제 시선은 오는 4월11일 개막하는 시즌 첫 메이저 마스터스로 향한다. 영국의 유명 베팅업체 베트페어는 이날 매킬로이를 마스터스 우승 배당률 최저 1위(7/1)에 올려놓았다. 세계랭킹 1위 더스틴 존슨(미국)이 2위(10/1), 우즈는 5위(12/1)다. 배당이 낮을수록 우승 확률을 높게 본다는 뜻이다. 우즈가 최저 1위를 달리던 흐름을 존슨이 뺏어 갔고 매킬로이가 존슨과 우즈를 끌어내렸다.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우즈-존슨-매킬로이로의 흐름은 거의 비슷하다.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브리티시 오픈(디오픈), PGA 챔피언십, US 오픈을 줄줄이 우승한 매킬로이는 마스터스 트로피만 챙기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매킬로이의 마스터스 최고 성적은 2015년의 4위였다. 매킬로이는 “TPC소그래스가 (마스터스 대회장인) 오거스타와 비슷하다. 여기서 많은 것을 얻었다”며 “요즘 인생 최고의 골프를 선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이 흐름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했다.
전날 단독 선두였던 욘 람(스페인)은 17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로 보내는 등 이날 4타를 잃고 11언더파 공동 12위로 미끄러졌다. 짐 퓨릭(미국)이 15언더파로 준우승했고 우즈는 3타를 줄여 6언더파 공동 30위로 마쳤다. 페어웨이는 두 번만 놓치고 퍼트는 26개로 막은 우즈는 “정상궤도로 들어섰다”며 마스터스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한국 선수 중 최고 순위인 7언더파 공동 26위에 오른 안병훈은 9만4,375달러(약 1억600만원)를 받았다. 강성훈과 김시우는 각각 3언더파 공동 47위, 2언더파 공동 56위로 마감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