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가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전 출판인회의 회장)에게는 현재의 인생을 만든 운명 같은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진보 개혁 성향의 민중신학자 고(故) 안병무 박사와 남편인 김영종씨다.
첫 번째 인생의 전환점은 이화여대 대학원 기독교 학과를 졸업한 후 1982년 한국신학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맞았다. 강 대표는 “안 박사님이 만든 한국신학연구소에 입사하면서 편집·번역 등은 물론 사회를 보는 눈 등 많은 것을 배웠다”며 “안 박사님은 저에게는 ‘사회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사회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도구로서의 책을 어떻게 기획하는지부터 삶의 자세까지 배웠다”고 토로했다.
강 대표는 몇 년 간 연구소에서 일하다 남편인 김영종씨가 설립한 사계절출판사에 1987년 입사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서적을 발간하며 국내에서 영향력 있는 출판인으로 거듭나는 토대를 마련했다. 당시 남편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많은 운동권 출신 학생들이 그러했듯 1982년 출판사를 차렸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가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강 대표는 “당시 정권이 달가워하지 않은 사회과학 서적을 출간하는 바람에 금서로 지목돼 판매금지를 당하는 일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다른 사회과학 서적 출판사가 그렇듯 이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한번은 노동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새날의 길잡이’라는 서적을 펴낸 적이 있었다. 당시 모 신문사의 기자가 형사들이 불시에 출판사를 압수수색할 것이라는 정보를 알려줬다. 강 대표는 “다행히 책을 비밀장소에 숨길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연행될 준비를 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낭만적인 시절의 이야기”라며 웃어넘겼다.
또 한 번은 초등학생이던 딸이 아침에 울고 불면서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아빠가 출근길에 잡혀 검은 차로 연행됐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목욕탕에서 양치질하고 있다가 잠옷 바람으로 밖으로 나가 애 아빠가 연행되는 자동차 번호를 보려고 정신없이 달려갔다”며 “이제는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에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 대표는 지금처럼 ‘파워 출판인’으로 자리잡은 데 대해 모든 공을 남편에게 돌렸다. “처음 출판사 대표직을 맡았을 때 서로 10년마다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더군요. 하고 싶은 공부하고 글 쓰는 재미를 만끽하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책 출간이나 계획은 이미 김영종 전 대표가 세워뒀어요.”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