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자기 앞의 생' 어른에게도 어른의 사랑이 필요하다


27년 전 살았던 동네를 아주 오랜만에 찾았다. 집에서 성당까지 족히 30분은 걸렸던 거리를 5분 만에 걸었다. 30년 넘게 그 자리에 있는 문방구를 지나 피아노학원을 올려다보며 일곱 살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간은 흘러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아버지도 곁을 떠났고, 우리 가족이 굳이 이곳을 찾을 일도 없어졌다. 그러나 동네는 어릴적 추억 그대로,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다가왔다. 언제든 네가 찾아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린시절의 가장 큰 고민은 ‘이가 썩었는데 치과에 하루 더 늦게 가는 법, 학원에 빠져도 엄마에게 연락이 안 가는 법’이었다. 혼나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놀기 위해 고민했던 그 자리에서 늦은 밤 훌쩍 커버린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연극 ‘자기 앞의 생’에서 열 살 모모의 모습으로 구현된 작가 로맹가리(에밀 아자르)의 삶에 대한 고백은 솔직하다. 어린아이가 묻는 인종과 종교 직업 재력에 대한 질문에 늙은 창녀 로자는 친절하게 답한다. 그러나 그는 그 뜻을 알 길이 없다. 그에게는 매일 매일이 새롭고 모든 사람이 신기하며 삶은 오로지 오늘을 살아가는 것 뿐이다.

지독하게 가난할수록 작은 것에 만족한다. 욕심이란건 끝이 없어서 맛을 볼수록 더 찾게 되는 법이다. 모모가 만나는 이들 모두 그를 배척하지 않는다. 그를 돌보는 로자부터 하밀 할아버지로 대표대는 남성, 아이스크림을 사주거나 푼돈을 쥐어주는 여성들 사이에서 모모는 가족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

가족에 대한 환상은 자신을 로자에게 맡긴 친부모에 대한 환상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왜 태어났는지, 왜 버려졌는지 모르기에 그는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롯이 자신을 7년간 돌봐온 로자에게만 집착할 뿐이다.

로자는 모모에게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그녀의 과거는 포장됐다.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너그러운 인생. 현실과는 약간 동떨어진 로자의 이야기는 그녀가 쓰러진 이후 포장을 한겹씩 벗겨나간다. 생기를 잃어가며 강렬했던 과거와 마주하는 그녀는 독일군에 속아 수용소에 끌려가기 직전의 설레는 모습으로, 사창가에서 남성을 유혹하는 모습으로 모모와 마주한다.



숨기고 싶던 진실을 한꺼풀씩 벗겨내던 그녀를 따라 모모는 ‘아지트’인 지하실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녀가 그곳에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도 자신을 찾을 수 없는 공간에서 로자는 현실에 대한 공포로 인해 찬란했던 과거를 추억한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환상과 현실의 경계와 마주한다.

이 시점에서 등장하는 친아버지는 그나마 남아있던 친부모에 대한 궁금증마저 앗아간다. 부모가 자신을 기르지 못하는 비밀을 알게되고, ‘무슬림이 아니면 내 아들이 아니’라고 절규하며 도망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그는 열네살 실제 자신의 나이를 찾는다. 자신이 열살인지 열네살인지, 무슬림인지 유대인인지 질문과 진실을 초월한 모모는 존재의 이유를 로자에게서만 찾으려 한다.

로자의 병이 깊어질수록 그는 삶의 끝과 직면한다. 모모는 마지막 순간을 앞둔 그녀를 아지트인 지하실로 옮긴다. 편안하게 안식을 맞은 그녀 옆에서 그는 어둠의 시간을 넘어 다시 태어난다. 그녀의 사랑을 추억하며 모든 것을 초월한 어른이 된 모습으로.

열살인 줄 알았던 모모가 실제 열네살이라는 사실은 차이가 크다. 열네살은 어린이와 청소년이 갈리는 나이, 교복을 입기 시작하는 나이, 2차 성징과 사춘기에 돌입하는 나이다. 열살의 질문과 열네살이 들은 답, 즐거워하며 마주하던 모든 이들과의 관계와 환상이 현실로 바뀌게 되는 시점이다.


병색이 완연했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함께 살던 집 앞에 섰다. 무리해서 사준 자전거를 타는 모습에 기뻐하시던 그 자리에 다 큰 아들은 차를 대고 담배를 물었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건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정작 오늘이 불안하다. 세상이 이렇다고 아버지는 왜 한번도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아니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어린 마음에 그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을 뿐.

인터넷에서 종종 ‘어릴적 아버지가 취해서 손에 통닭을 사오시는 날이면 너무 행복했는데 어른이 되어보니 그날은 아주 힘들었던 날이었구나’라는 글을 본다. 그 뜻을 알아버린 나이에 어른들은 더 그날이 그리워진다.

다시 어린 아이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무작정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두려울 것 없게 만들어주는 사랑. 어른에게도 그 따뜻한 마음이 필요할 뿐이다. ‘자기 앞의 생’이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도록.

3월 23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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