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AFP연합뉴스
독일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약속한 군사비 지출 확대 약속을 깨는 예산안을 편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러시아산 가스 수입과 5세대(5G) 사업에서의 중국 화웨이 배제 문제를 놓고 미국과 대립해온 독일이 다시 한번 트럼프 정부에 반기를 들면서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독일 간 냉각 기류가 더욱 확산하는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독일이 트럼프의 요구에 반발해 군사비 지출을 늘리려던 계획을 무산시키는 방안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공식적으로 오는 2024년까지 군사비 지출 비중을 국내총생산(GDP)의 1.5%로 늘리고 향후 이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목표인 2%에 근접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나토 회원국들의 대미 안보 의존을 문제 삼으며 국방비 지출을 GDP의 2%로 높일 것을 강력히 요구한 데 부응한 셈이다.
하지만 이날 독일 재무부가 공개한 새 예산안에는 올해 1.33%인 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중이 내년에 1.37%로 올랐다가 2022년에는 1.29%, 2023년에는 1.25%로 되레 낮아진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내년 예산안 초안에는 독일 국방부 예산으로 447억유로(약 57조3,300억원)가 책정됐는데, 이는 국방장관이 요구한 금액인 472억유로에도 못 미친다. 독일 정부 고위관계자는 WSJ에 “국방비 지출을 2%로 올리는 목표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이 수치는) 정부에 도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는 20일 내각회의에서 예산안을 최종 확정한다.
WSJ는 또 독일 정부의 국방 예산 삭감은 미국 전투기 구입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WSJ는 “지난 1월 독일 국방부는 미국 보잉사의 F/A-18 전투기 45대 구매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며 “낮은 군비 예산은 독일이 미국 전투기를 사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독일 정부의 움직임은 최근 몇 달간 이어져온 미국과의 갈등의 연장선상인 것으로 분석된다. WSJ는 “독일은 러시아에서의 가스 구입과 중국의 네트워크 장비 수입 제한, 독일 기업들의 이란과의 거래 금지를 요구하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해왔다”며 “게다가 메르켈 총리는 내년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유럽연합(EU) 수뇌부 간 전례 없는 정상회담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중국은 13개 EU 국가와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상태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